살아있는 한 걷고, 걷는 한 살아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지영 기자]
산책의 시작. 처음 몇 걸음은 습관적으로 무심하게 걷습니다. 어느 정도 걸으면 몸이 풀려 걷는 품새가 자연스러워지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깁니다. 마른 나뭇가지에 돋아난 꽃봉오리들, 마주 오는 사람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차량들.
▲ 산책하다 만난 총총 걸어가는 박새 ⓒ 김지영 |
새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는 데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새소리에 포함된 '1/F(진동수) 흔들림'이라는 음이 바로 그 비밀입니다. 강물이나 파도 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이 음은, 행복 호르몬인 세르토닌을 생성하고 스트레스 저항력도 높인다고 합니다. 소리와 감정의 연관관계가 참으로 오묘합니다.
세상 모든 소리가 새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리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반대로 우리 주변엔 듣기 힘든 소음들이 산재합니다. 상사의 피드백을 가장한 비난, 층간소음, 운전자의 감정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는 날카로운 경적소리 등 평정을 흩뜨리는 소리들이 말입니다. 저에게 산책은 그런 소화할 수 없는 소리들을 걸러내는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체에 거른 듯 고운 소리만을 담아, 잔뜻 굳어버린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었지요.
▲ 다니구치 지로 책 <산책> |
ⓒ 김지영 |
작가의 아름다운 그림은 제가 산책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돌아보게 했어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글로써 이런 산책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고.
라디오를 듣는데 한 디제이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라디오는 알고리즘을 깨는 매체라고요.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비슷한 취향의 음악이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라디오의 장점이라고 말입니다.
▲ 공원 산책을 하다 바라본 하늘 |
ⓒ 김지영 |
걷기의 신체적 효과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근육 강화, 치매 예방, 항암, 혈액순환 개선, 녹내장 위험 감소 등 짧은 글에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만병통치약이 아닌가도 싶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잘 걷는다면 건강유지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서 만난 작품 '걸어가는 사람' |
ⓒ 김지영 |
작품에서는 살아있기에 계속 걸어야 하는 존재의 고단함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계속 걷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실존과 고독도 생에 대한 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면 고독을 그토록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한, 어떤 상황과 감정에 놓여있든 간에, 인간은 계속 걸어가야 하는 존재겠지요? 걷는 일은 때로 무거운 의무처럼 다가오는 날도 있겠지만, 그러다가도 예전엔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풀어진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내일도 힘을 내어 걸어보아야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며, 산책' 연재를 마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참고한 책들 : <당신은 아직 걷지 않았다>(걸리버), <걷기의 재발견>(글담출판사), <동네에서 만난 새>(도서출판 가지), <이토록 재미있는 새 이야기>(북스힐), 두산백과 '걸어가는 사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민에게 치욕 안긴 윤 대통령... 누군가의 냄새가 난다
- 윤 대통령, '빈 손' 회담 어떻게 책임질 건가
- 사라진 오스트리아 맥주,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 살아있다
- "일본은 독도 문제 논의했다는데, 윤 대통령 왜 숨기나"
- 이인규 "노무현 논두렁 시계 흘린 건..." 검사 출신 민정수석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그런 뜻이었나?
- '죽음의 구름' 뒤덮인 충격의 도시를 공개합니다
- 빠진 강제동원 사과 대신 '오믈렛' 비중있게 다룬 <조선><중앙>
- 윤 대통령 "한일 기업협력, 규제 풀 것"... 경단련 회장 "팬 됐다"
- [오마이포토2023] '지하철 시위' 박경석 체포 "장애인 차별, 현실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