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을 앞둔 교사의 넋두리이자 반성문

이준만 2023. 3. 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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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중요시 하는 학교가 적은 게 안타깝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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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만 기자]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배운다. 교사는 수업을 하고 학생은 수업을 듣는다. 학교는 수업하는 사람과 수업 듣는 사람으로 득시글득시글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키워드로 삼아야 할 것은? 당연히 수업 아니겠는가. 이보다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도 그리 많지 않은 듯싶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1989년 교직에 첫발들 들인 이래 지금까지, 내가 근무한 그 어떤 학교에서도 수업이 핵심 의제로 작동한 기억이 없다. '내가 근무한 학교'라는 점을 한 번 더 밝혀둔다. 내가 근무해 보지 않은 학교에서는 수업이 핵심 의제가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으니 말이다.

나의 첫 근무지인, 읍 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수업하는 도중에 불려 나와 교육청 장학사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토록 급박한 일이었냐고? 그럴리가. 30여 년 전 일이지만, 또렷이 기억난다. 보고 공문 마감 기한을 놓친 것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울려 나오는 장학사의 고압적 목소리에 쩔쩔매면서도, '이게 수업 도중 불려 나올 만한 문제인가?'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땐 그랬다. 1990년대 초반이니까.

근무 연한 5년을 다 채우고 시내 고등학교로 옮겨 갔다. 부임 인사하러 그 학교 교감 선생님을 찾아갔다. 일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칭찬했다. 칭찬을 들으니 물론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수업 이외의 업무 처리를 잘한다는 이야기이다. 수업 이야기는 없었다. 교사의 역량이 수업이 아니라 업무 처리 능력에 의해 재단되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첫 시간에 직원회의를 열었다. 말은 회의였으나 의견을 주고받지는 않고 주로 업무 담당 부장 교사와 관리자(교장, 교감)의 전달 사항과 지시사항을 듣는 자리였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 1회 꼬박꼬박 행해지는 그 자리에서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장 교사나 관리자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학교에서의 수업은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와 마찬가지로 너무 당연한 것이라 그랬던 걸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땐 그랬다. 199년대 말까지의, 내가 근무했던 학교 풍경이다.

그 후, 여러 학교를 옮겨가며 근무했다. 공립학교 교사의 숙명이다. 그러는 동안, 수업의 중요성은 점점 강조되기 시작했다. 교육부, 교육청 차원에서 다양한 수업 방법에 대한 연수와 자료를 제공했다. 어떤 학교에서 수업을 바꾸었더니 학교가 바뀌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 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저 먼 곳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는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없었다.

그렇게 20년이 훌쩍 지났다. 지역 내의 혁신학교로 옮길 기회가 생겼다. 혁신학교라면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학교일 테니까, 한번 도전하는 마음으로 옮겨 갔다. 이미 적지 않은 나이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변화하는 수업을 배우고 또 그런 수업을 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수업 방식을 시도하고 있던 터라, 혁신학교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수업 방식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듯싶다.

그런데 옮겨 간 그 혁신학교도 수업에 방점을 찍은 학교는 아니었다.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강조했다. 방과 후에 매우 다양한 학생 활동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이런 활동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수업 방식의 변화에 관심이 지대했던 터라, 이내 그 학교에 싫증이 났다.

게다가 그 학교에서는 수업 방식을 변화시켜 학생 중심 수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직원회의 시간. 수업 방식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장 교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 주부터 1, 2학년 교실의 책상 배치를 ㄷ자 형태로 바꾸라고 했다. 왜 그래야 하냐고 했더니, 그냥 그렇게 하란다.

배움의 공동체 방식의 수업에서 교실 형태를 그렇게 한다고 들은 게 있어서, 학교의 수업 방식을 배움의 공동체 방식으로 바꿀 예정이냐고 물었다. 딱히 그렇지만 않지만, 아무튼 그렇게 교실 책상 배치를 바꾸라고 했다.

책상 배치를 ㄷ자 형태로 하고 강의식 수업을 진행하면, 칠판을 마주 보고 앉아 있지 않은 학생들은 매우 불편하다.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계속 고개를 외로 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업 방식을 바꾸지 않고 교실 책상 배치만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물론 그 혁신학교에는 교사 개인적 차원에서 학생 중심 수업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학교 전체 차원에서 학생 중심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을 강력하게 추동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누군가 중심이 되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추동하지 않으면 학교 전체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런 혁신학교라면 일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그래서 2년 만에 지금의 학교로 옮겨 왔다.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교장도, 교감도 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교사들이 가끔 눈에 띌 뿐이다.

안타깝다. 아쉽다.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나, 정년을 1년 반 정도 남긴 지금이나 수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물론 조금은 나아졌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언젠가는 학교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교사 개개인이 수업 방식을 바꾸고 그것이 학교 전체로 퍼져나가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교장, 교감이 중심을 잡고 강력하게 추동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학교의 수업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은 대개 교장, 교감의 생각에 잘 부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정년을 앞둔 교사의 넋두리이자 반성문이다. 수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학교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자의, 회한 가득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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