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문구 읽어달라"…韓 요구에, 끝내 입닫은 日
16일 한·일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강제징용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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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입장 계승" 또 반복
이날 회견 모두발언에서 기시다 총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1998년 10월 한·일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 직후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상이 이미 밝혔던 입장과 같다.
이어 한국 기자단에서 '일본의 호응 조치가 부족하다는 한국 내 여론을 호전시키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겠냐'는 질문이 나오자 "오늘도 여러 가지 성과가 있었다"며 "앞으로도 양국 공조를 통해 하나하나 구체적인 결과를 내고자 한다"고 답했다. 이날 양국이 발표한 셔틀외교 복원, 수출규제 해제 등 사안을 호응 조치의 일환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측이 요구해온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전된 입장 표명' 등 핵심 조치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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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성의 촉구 했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정부가 지난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의 언급으로 이미 밝혔던 "일본이 정부의 포괄적 사죄, 기업의 자발적 기여로 호응해오길 기대한다. 물컵의 나머지 절반을 채워달라"는 입장 정도만 윤 대통령이 반복했어도, 일본에 대한 보다 명확한 메시지가 됐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절반의 출발을 한 해법을 완성하기 위한 일본의 호응을 (윤 대통령이) 적절히 언급하지 못한 게 아쉽다"며 "한국이 먼저 조치를 취했으니 일본도 성의 있는 조치를 해서 잘 마무리되길 기대한다는 정도로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배상금의 '제3자 변제' 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갖게 되는 구상권 문제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못박았다. 지난 6일 외교부 고위당국자도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외교가에선 "대통령 차원에선 명확한 언급을 아낀 채 보다 유보적 입장을 취했어야 추후 일본의 호응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 가능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5일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은) 나중에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만한 해결책"이라는 입장을 반복하는 정도로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기시다 답방 땐 성과 있어야
전문가들은 셔틀 외교의 일환으로 향후 몇달 안에 기시다 총리의 답방이 이뤄지면, 공동 선언의 형태든 총리 차원의 직접적 언급이든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 차원의 보다 진전한 입장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5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일 간 새 미래를 여는 구상 등을 협의하는 준비위원회를 만들 수 있다"며 향후 '윤석열-기시다 선언'을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일이 이제 막 관계 개선의 과정에 접어들었으니 조만간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왔을 때 역사 문제와 관련해 보다 진전된 입장을 기대해볼 수 있다"며 "국내적으로 일본의 호응이 미흡하다는 목소리 또한 향후 일본의 호응을 이끌어낼 압박 유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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