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포커스] 우리 공은 아직도 느리다
차승윤 2023. 3. 17. 08:05
한국 야구대표팀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3개 대회 연속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숙적 일본과 벌어진 격차를 눈으로 확인했고,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호주에도 덜미를 잡혔다.
예상 밖 참패에 각종 진단이 쏟아져 나왔다. 주로 선수들의 기본기, 그리고 제구에 대한 지적이다. 콘택트를 경시한 홈런 스윙을 하고, 정교하게 투구하는 대신 공을 강하게만 던진다는 지적 등이다.
다만 여전히 그 힘에서도 밀리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번 대회 일본 대표팀은 오타니 쇼헤이가 최고 시속 161㎞를, 사사키 로키가 최고 시속 165㎞를 던지며 화제를 모았다. 두 투수뿐 아니라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오타 타이세이, 다카하시 히로토 등이 최고 시속 156㎞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일본전에서 던진 이의리의 시속 155㎞를 제외하면 일본과 비교할 공을 찾기 어렵다. KBO리그 투수들의 구속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빨라졌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벌어진 일본과 격차만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선수들의 재능을 키우기에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KBO리그 구단 관계자인 A는 "선수들 체격은 이전보다 좋아졌지만, 활용하는 능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미국 선수들은 마른 이들도 시속 100마일(161㎞)을 기록하는데, 체격이 더 좋은 한국 선수들은 그런 구속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 선수들은 '야구'는 많이 하는 반면, '운동'을 적게 한다. 구속은 단순히 많이 던진다고 늘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만 한다고 증가하지도 않는다"며 "신체 가동성을 늘리는 유연성 훈련을 제대로 해야 하고, 공을 던질 때 필요한 순간적인 폭발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는 현장에서 중시하는 가치와 국제대회에서 활용되는 가치가 괴리된다고 지적했다. 구단 관계자 B는 "(홈런과 구속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주루와 작전을 강조하지만, 국가대표에서는 각 팀의 에이스와 4번 타자들만 주전으로 출전한다"며 "그런데 장타자의 재능을 제대로 계발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보니 그중에서 30홈런을 장담할 수 있는 타자가 없다. 한국은 그저 힘 싸움에서 호주와 일본에서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기적인 성과를 우선해야 하는 풍조도 문제다. 홍창기·김서현 등 고교·프로 선수들을 지도해 온 윤형준 트레이너는 “한국은 결과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학생 선수들은 각 나이 때에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해야 하고, 좋은 개인 성적을 거두기 위해 뛴다"고 지적했다.
윤 트레이너는 "육성은 성적과 다른 개념"이라며 "지금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장기적인 측면에서 지금 해야 할 것들을 해야 한다. 스포츠 선진국들은 LTAD(Long Time Athletic Develop) 개념을 도입해 선수들의 각 시기에 맞는 트레이닝을 제공한다"고 비교했다.
육성과 성적이 다르다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 야구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그는 "우리 야구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야구에만 몰두한디. 다양한 움직임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와 시간이 없다. 당장의 성적이 나오는 움직임과 직관적인 방법으로만 야구하기 쉽다"며 "그렇게 되면 잘못된 신체 사용으로 가동성이 낮아지고, 파워도 감소한다. 부상도 계속 따라다닌다"고 경계했다.
윤형준 트레이너는 "수능을 잘 보려면 문제도 많이 풀어야 하지만, 오답 복기와 개념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 야구는 배팅을 많이 치고, 경기를 많이 한다.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끝난다. 왜 오답인지 모르면 문제 풀이를 아무리 많이 해도 같은 오답이 나온다"고 비유했다.
KBO리그 내에 사례가 없던 것도 아니다. 윤 트레이너는 "과거 주목받은 삼성의 BB 아크나 LG의 피칭 아카데미가 구단별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KIA 타이거즈도 손승락 현 퓨처스 감독이 함평 챌린저스필드에서 운영한 투수 아카데미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구속 상승효과를 봤다.
야심 차게 피칭 아카데미를 출범시켰던 LG는 수년 내 성과가 나오지 않자 이상훈 코치가 물러난 후 운영을 중지했다. 모기업과 팬들이 성과로 압박하는 KBO리그에서 LTAD 개념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인내심을 갖춰야 한국도 사사키 같은 투수를 키워낼 수 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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