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니들만 뛰냐 우리도 뛴다

강창욱 2023. 3. 1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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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축구에 푹 빠져 있다.

1주일에 평일 기준 두세 번, 주말 포함 서너 번은 직접 운동장에 나가 사람들과 공을 찬다.

개중에 사회인 동호회에서 뛰어본 사람이 한둘 있었지만 대부분 축구공을 차보기는 생전 처음인 무경험자였다.

이제 막 시작한 아내 팀 선수들은 기량을 빨리 끌어올리려고 각자 축구교실까지 찾아가 '선출'(선수 출신) 강사들에게 개인교습을 받아가며 준비해온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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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산업부 차장


아내가 축구에 푹 빠져 있다. 1주일에 평일 기준 두세 번, 주말 포함 서너 번은 직접 운동장에 나가 사람들과 공을 찬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도 온몸이 푹 젖을 정도로 뛰었고,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꽂힌 한겨울에는 쉬는 거 아닌가 했더니 주말에도 새벽같이 나가서 밤사이 경기장에 내린 눈을 넉가래로 밀어가며 뛰었다.

그전까지는 TV로 ‘뭉쳐야 찬다’나 ‘골 때리는 그녀들’ 같은 축구 소재 예능 방송을 챙겨보는 정도의 시청자였다. 자주 과몰입하며 극적인 순간에 환호하거나 낙담하거나 애태우는 애청자였고 수시로 “직접 하면 재밌을 거 같다”고는 했지만 그 모습을 정말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축구는 여럿이 뭉쳐야 할 수 있는데 운동장을 직접 뛰고 싶어 하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느냐는, 참 짧은 생각이었다. 아내는 지난해 회사에 여자풋살 동호회 창단 공지가 뜨자마자 달려가서 입단했다. 그 멤버만 20명이 넘었다.

개중에 사회인 동호회에서 뛰어본 사람이 한둘 있었지만 대부분 축구공을 차보기는 생전 처음인 무경험자였다. 트래핑도, 드리블도, 몸싸움도 해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헤딩은 엄두도 못 냈다. 공이 날아오면 몸이 먼저 달아났다. 공은 받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이었다. 누가 용감하게 헤딩을 해내면 다 같이 “우와” 하며 축하할 정도로 축구라는 운동에 순진무구한 초보자들이었다.

창단 후 두 달 만에 외부 팀과 붙은 첫 매치 결과는 참패였다. 이쪽은 두 골을 넣었는데 그중 하나가 자책골이었고, 저쪽은 셀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넣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내 팀이 뛰는 모습을 관전했는데 상대는 한눈에도 강팀이었다. 그들은 미리 조율된 역할에 맞춰 동선을 절제했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버릴 공은 버리는 저쪽과 달리 이쪽은 우르르 공을 쫓느라 곳곳이 허술해졌고 상대에 쉽게 골문을 내줬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분해하던 아내를 잊지 못한다. 나는 위로랍시고 “재미로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가 화만 더 돋우고 말았다.

취미 삼아 하는 것일 테니 승부엔 큰 욕심이 없으리라는 생각은 ‘여자들이 축구를 직접 하려고 하겠나’에 이은 두 번째 오류였다. 아내 팀이나 상대 팀이나 무조건 이기기 위해 뛰고 있었다. 시합 내내 진지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아웃되는 볼을 살리려고 몸을 날리다 펜스에 들이받기도 했다. 모두의 목표가 승리였던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한 아내 팀 선수들은 기량을 빨리 끌어올리려고 각자 축구교실까지 찾아가 ‘선출’(선수 출신) 강사들에게 개인교습을 받아가며 준비해온 경기였다.

축구에 진심인 그들은 패배로 흥미를 잃는 게 아니라 더 똘똘 뭉쳐 분발했다. 평일은 점심시간을 쪼개거나 퇴근 후에 훈련과 시합을 하고 토요일엔 조기 풋살을 했다. 아내는 양쪽 엄지발톱이 다 빠졌고, 간신히 돋아난 발톱도 다시 까맣게 피멍이 들어 빠지기 직전이다. 그러는 동안 여러 회사에 여자풋살팀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경기가 3파전, 4파전으로 확장됐다. 아내 팀은 4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첫 상대였던 팀과 이제는 동점까지 가서 승부차기로 우열을 가려야 할 정도가 됐다. 그래서 상대 팀도 칼을 갈고 있는 모양이다.

축구는 이기는 쪽에든 지는 쪽에든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갓 입문한 많은 여성이 “이 재밌는 걸 왜 우리는 어릴 때 안 했을까” “더 일찍 시작했으면 지금 더 잘할 텐데”라며 아쉬워한다고 한다. 오랫동안 ‘여자=응원’이라는 도식에 갇혔던 이들이 이제라도 사방에서 경기장으로 뛰어나오는 모습은 높은 댐을 무너뜨리고 쇄도하는 물살처럼 어딘지 웅장하게 느껴진다.

강창욱 산업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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