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스스로 성장 추구하는 사람은 무소유라도 빛난다”

우성규 2023. 3. 17.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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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무명’ ‘관계’ 저술한 김일환 우.리.가.본.교회 전도사
김일환 우.리.가.본.교회 전도사가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 카페 라이에서 ‘혼자’ ‘무명’ ‘관계’의 삼부작을 저술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교회 이름은 ‘우.리.가.본.교회’이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소속으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로에 위치해 있다. 우리가 성경에서 봤던 교회, 우리가 보고 싶은 교회, 우리가 본이 되는 교회가 되자는 의미다. 글자 사이 마침표는 강조의 의미 외에도 점이란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자는 뜻을 담았다. 개척 멤버 4명으로 시작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우.리.가.본.교회는 김일환(37) 전도사가 2020년 8월 개척했다. 신길동 사람인 김 전도사는 서울신학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최우등 졸업하고 현재 조직신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교회 개척이 어려운 시대에 전도사 신분으로, 그것도 코로나 와중에 개척에 나선 건 교단을 넘어서 한국교회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4명의 성도로 시작한 교회는 3년 만에 수십 명 규모로 늘어났다. 지금은 신길로 대로변 건물 3층 ‘카페 라이’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 수제 쿠키와 커피 전문점을 표방한 카페 라이(lie)는 실은 카페가 아니다. 교회다.

김 전도사는 교회 개척과 더불어 ‘혼자’ ‘무명’ ‘관계’ 등 3권의 책을 규장출판사에서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목사가 힘듦을 이겨낼 때’ ‘목회철학’ 등 사표(師表)가 되는 목회자들을 찾아가 대담을 나눈 책까지 합치면 벌써 5권을 저술했다. 지난 13일 카페 라이에서 만난 김 전도사는 규장의 두 글자 제목 시리즈 책들을 내놓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2020년 ‘혼자’는 ‘그리스도인의 1인 감정 사용법’이란 부제를 달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소외당하고 주목받지 못하던 1인 가구에 집중했습니다. 애매한 30대, 모호한 40~50대 싱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외로움 혼밥 성욕 사랑 그리고 ‘나’라는 키워드로 살폈습니다. 교회 안의 이름 없는 존재들을 살핀 두 번째 책 ‘무명’(2021)에 이어 나와 나, 나와 이웃, 나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다룬 ‘관계’(2023)까지 이어졌습니다.”


그의 책은 탄탄한 조직신학 논리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대’라는 호칭으로 매우 친근하게 독자에게 접근한다. 김 전도사는 “독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고 안 믿는 이들까지 생각해서 ‘그대’란 호칭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관계’ 책은 우선 ‘나와 나’의 관계부터 집중할 것을 주문하며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 앞에 있는 것들에 관하여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불리 열악함 등을 따지지 않고 자기 앞에 주어진 것을 통해 어떤 성숙을 이룰지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은 “무소유라도 빛난다”라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풀(full)소유라도 추한 법”이라고 결론을 낸다.


나와 이웃의 관계에 대해선 우선 교회 안에서부터, 성도들 사이의 사랑과 우정과 헌신의 가치부터 챙기자고 말한다. 김 전도사는 “예수님도 먼저 열두 제자에 집중하셨고, 사도 바울 역시 그가 소속된 공동체의 관계부터 생각했다”면서 “즉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했던 말이에요. 직장 상사들에게 말단 직원들이 했던 말로 기억해요. ‘백날 나를 괴롭혀 봐라. 내가 열 받나. 떡볶이로 다 풀어버리지.’ 아무리 날 괴롭혀도 떡볶이 먹고 치킨 먹고 다 풀어버린다는 거지요. 우리에겐 교회 공동체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기독교인들은 사실 특이하죠. 오른뺨 맞고 왼뺨도 내밀고, 겉옷 달라는 자에게 속옷도 주고, 오리 걷자고 하면 십리를 걷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잖아요.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하려면 교회 공동체가 떡볶이처럼 돼야 하는 거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관계는 우.리.가.본.교회의 핵심이다. 소박한 예전을 추구하면서도 교회력을 채택해 설교자가 설교 본문을 자의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모든 성도가 매일 성경으로 큐티(말씀묵상)를 하고, 김 전도사는 그중 하나의 본문으로 주일에 설교한다. 하나님 사람 자연 환대 놀이 식사 교제를 강조하는데 그중에서도 공동 식사는 동네에서 가장 장사가 어려운 곳의 식당을 일부러 이용한다. 맛이 조금 덜할지라도 지쳐있는 동네 음식점들에 긍정 에너지를 선사하려는 마음에서다.

지난해 12월 성탄절을 맞아 서울 영등포구 교회에서 단체 사진 촬영에 응한 성도들. 우.리.가.본.교회 제공


우.리.가.본.교회의 예배 시간은 주일 오후 3시다. 이 때문에 주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또 다른 개척교회가 공유예배당 형태로 카페 라이를 빌려 예배를 드린다. 개척교회가 또 다른 개척교회를 위해 공유예배당을 제공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주일 11시 드리는 예배 시간마저 양보하는 건 더더욱 드문 일이다. 김 전도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인에게 가장 모자란 것이 늦잠이라고 하죠. 우리가 성경에서 배운 안식은 영적인 영역에만 있지 않고 육체적 영역에도 있을 거예요. 주중에 일터에서 지친 성도들에게 필요한 안식을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 오후 3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성도들은 서울과 경기도 심지어 충남 서천에서도 여유 있게 예배를 드리러 올 수 있다. 자신들도 개척교회이면서 또 다른 개척교회를 돕는 일은 1년에 한두 차례 이어지는 원정예배를 통해서도 구현된다. 지난해엔 전북 진안의 개척교회를 찾아가 금요일부터 주일까지 전 성도가 수련회를 했다. 고령화된 농촌에 일손이 없어 수확하지 못하던 개복숭아 따는 일을 돕고 예배까지 함께 드리며 은혜를 나누는 자리였다.

김 전도사는 계속해서 두 글자 제목의 책을 펴낼 예정이다. 내년에는 목사 안수도 앞두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조직신학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아주 아름다운 학문”이라며 “비기독교인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가는 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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