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CS위기에도 ‘빅스텝’…라가르드 "은행시스템 강하다"(종합)

뉴욕=조슬기나 2023. 3.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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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앙은행(ECB)이 예고대로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이어갔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크레디트스위스(SC) 위기설로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대두한 가운데서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인플레이션과 단호히 싸울 것"이라며 추가 인상 여지가 있다고도 예고했다. 이는 다음주 금리 결정을 앞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향후 통화정책 경로에도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빅스텝 지속한 ECB...인플레 싸움에 무게

ECB는 16일(현지시간) 열린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로 0.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이로써 금리를 0%로 유지해 오던 ECB는 지난해 7월 0.5% 인상을 시작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다. 수신금리와 한계대출금리 역시 각각 3.0%, 3.75%로 0.5%포인트씩 높였다.

ECB는 "인플레이션이 오랫동안 높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돼 물가 목표치 2%로 제때 복귀하기 위해 오늘 금리인상을 결정했다"면서 "높아진 불확실성은 금리 결정에 있어 자료에 기반한 접근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고 결정 배경을 전했다. 이어 "ECB는 필요시 유로존의 금융 시스템에 유동성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준비를 완전히 마쳤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이날 ECB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10일 갑작스러운 SVB 파산을 시작으로 12일 시그니처은행 파산, 14일 CS 유동성 위기까지 최근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둘러싼 공포가 급격히 확산됐기 때문이다. 앞서 CS의 재무건전성 우려가 자금유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주가 급락 등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지자, 예고와 달리 ECB의 금리인상폭이 0.25%포인트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높아졌었다. 다만 스위스 금융당국이 이날 CS에 최대 500억프랑(약 70조3000억원) 자금을 긴급 수혈하기로 하면서 공포감은 다소 완화된 상태다.

라가르드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융시장의 긴장 상태를 모니터링 중"이라며 "유로존의 물가안정, 금융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대응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가안정과 금융시스템 안정이라는 두 가지 정책목표가 상호상충관계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 현재 은행 시스템이 훨씬 강하다고도 언급했다.

이날 ECB의 빅스텝은 그간 강화해온 금융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이자, 동시에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더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유로존 물가를 살펴보면 2월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5.6% 올라 전월(5.3%) 대비 상승폭을 키웠다. CPI 상승률은 8.5%로 둔화하긴 했지만 역시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인플레이션 불길이 여전히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 각국 당국의 빠른 개입으로 당장 금융리스크 전염 관련 급한 불은 진화됐다는 판단도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라가르드 총재는 "불확실성이 줄어들었을 때 물가상승 기조가 유지된다면 우리는 추가로(인상) 여지가 있다"고 인플레이션과의 싸움도 재확인했다. 이번 인상폭은 그간 라가르드 총재가 예고해온 수준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11년만에 처음으로 빅스텝을 밟은 ECB는 이후 2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으로 긴축 강도를 높였고, 최근 빅스텝을 세차례 지속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금리인상 경로는 언급안해...다음 타자 Fed는?

ECB의 빅스텝 단행으로 향후 금리 경로와 관련한 Fed의 셈법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앙은행은 여전히 높고 끈적한 인플레 억제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면서 "ECB의 결정은 미 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미국 은행 2곳의 파산으로 촉발된 시장의 위기 신호에 어떻게 대응할지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이날 ECB의 결정은 오는 21~22일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결정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져 왔다.

그간 시장에서는 SVB 파산 사태의 배경에 Fed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있다는 점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흐름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해왔다. 시장에서 이날 ECB의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유력시해온 이유다. Fed 역시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우세했던 빅스텝 카드는 현 테이블 위에서 치워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금리 동결이냐, 통상적인 인상폭인 0.25%포인트냐를 두고는 연일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후 현재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Fed가 3월 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82%가량 반영하고 있다. 전날 54%대에서 높아진 수치다. 전날 45%대로 올라갔던 동결 전망은 CS발 위기가 당국 개입으로 진화하면서 이날 18%로 내려갔다. 빅스텝 전망은 SVB 파산사태 이후 0%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Fed가 3월 FOMC 직후 공개할 점도표 등을 주시하고 있다. 금융리스크 안정이라는 숙제를 받아든 Fed가 고강도 긴축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함에 따라 다수 투자자는 최종금리가 5%를 웃돌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Fed가 12월 점도표에서 제시한 올해 연말 금리전망 중앙값(5.1%)을 하회한다. 앞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예상을 웃도는 인플레이션 등 지표들을 이유로 최종금리가 기존 예상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예고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날 ECB가 향후 금리 인상 속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며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긴축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스위스 투자은행(IB)인 UBS의 로한 칸나 금리 전략가는 "그들은 통화 정책과 금융 안정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근원물가가 상승에도 금융 시스템 불안으로 (ECB가) 향후 금리 인상 속도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몇몇은 Fed가 다음주 회의에서 덜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일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상원 금융위 청문회 모두발언을 통해 SVB 사태와 관련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건재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다고 재확인한다"며 "미국인들은 자신의 예금을 필요로 할 때 인출 가능하다는 것에 확신을 가져도 좋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SVB와 관련해선 "현 상황에서 유동성 위기가 있었다"며 "은행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이 같은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상세하게 조사할 것이다. 은행이 폐쇄된 것은 인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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