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두 원로의 기억 속 일제

고정애 2023. 3. 1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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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곳곳에 '이완용'식 딱지
송복·김정렴의 당시 경험은 달라
미래 안 가려고 역사 재구성하나
고정애 chief 에디터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어서’라는 매국노 이완용의 말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라고 따졌다. 윤 대통령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한 대목을 두고서였다.

조선(대한제국)의 잘못 없이 당한 일인데, 잘못이 있다고 주장하는 건 이완용식이란 논리였다. 민주당은 전국 방방곡곡에 ‘이완용’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의 이태 전 기고가 떠올랐다.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쓴 ‘해방미로(迷路)’다. 송 교수는 “나는 지금도 그 시대(일제)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 고민한다… 아무리 역사가 흘러도 과(過)는 말해도 공(功)은 들먹이면 안 된다는 걸까”라며 열 살 때 일화를 털어놓았다. 7월 7석, 동네 어른들과의 대화였다. 일제가 나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린 그에게 동네 최고의 문장(門長)이 타이르듯 말했다고 한다. 고종 시대 20년, 일제 35년을 산 이였다.

“1910년 합방 전 초근목피로 사는 건 그나마 나은 것이고, 3일에 죽 한 그릇도 먹기 어려워서 태어나는 애들은 얼마 안 돼 죽고, 그런데도 관에서는 이것 내라 저것 내라 제대로 안 되면 잡아가 곤장을 치고, 얼마나 많은 백성이 이놈의 나라 망해라 망해라 했는지 아느냐. 안 살아 보고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그런데 일제가 들어와서 제방을 쌓고 저수지를 만들고….”

송 교수는 “만일 일본이 원자탄을 맞지 않았다면 일제는 아직도 계속될 것”이라며 “전야지민(田野之民)의 민심이 일제 편이기 때문”이라고까지 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16일 오후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는 태극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공교롭게 원자탄 투하 때 폭심으로 2㎞도 안 되는 곳에 있던 한국인의 술회도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최장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으로, 당시 일본군 오카야마 연대의 선임 견습사관이었다. 그는 2006년 쓴 자서전에서 자신의 일본 육군 예비사관학교 입교에 대해 “일본은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버마·인도 등에 독립을 약속하고 협력을 요청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도 자치 정도가 아니라 독립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맞먹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다른 민족과 동등하게 일본에 대해 발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피폭으로 생사를 오간 그는 일본이 항복한 8월 15일 진급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 무렵 계속되는 고열로 앓을 때 한국인 일등병이 “한국인이 어떻게 높은 사람(소위)이 됐느냐”며 부채질해 주곤 했다고 적었다.

요즘 우리로선 쉽게 듣기도, 상상하기도, 또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1950, 60년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달랐을 것이다. 주한 미 외교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중앙 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가는 한국 정치’를 관찰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런 인상기도 남겼다. “민씨 일파가 지배한 20년 동안 걸출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다. 공백이 된 왕좌 주변에는 처음엔 끝없는 부패로, 그다음엔 점점 외국의 이권과 고문관들로 메워졌다. 이 중 일본인들이 가장 집요했으며, 결국 다른 세력들을 압도했다.” “대일 협력 문제를 놓고 보면 몇몇 확실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협력자와 비협력자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다.”

누군가 역사를 알지 못하면 일생 어린이로 남아 있게 된다고 했다. 역사의 맥락은 외면한 채 우리의 잘못은 없고, 순 남 탓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신봉해도 어린이일 것이다. 과거로부터 배울 게 없으니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복잡한 걸 복잡한 대로 이해하길 거부한다? 퇴보다. 언제부턴가 민주당의 태도다.
16일 오랜 만의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민주당은 “역사를 팔아서 미래를 살 수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작 미래로 안 가려고 ‘재구성한 역사’를 부여잡고 있는 모양새다. 참 일관됐다.

고정애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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