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다정함,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
“누가 나를 자기 인생에 끼워주고 싶겠어?” 영화 ‘더 웨일(The Whale)’에서 초고도비만의 중년 찰리(브랜든 프레이저)는 지독한 자기 혐오에 침몰해간다. 270㎏이 넘는 거구로 어두침침한 아파트에 유폐된 그를 찾아오는 이는 간호사와 딸, 선교사, 전처, 그리고 피자 배달원뿐이다.
눈길이 머문 것은 접촉면이 가장 적은 찰리와 피자 배달원 댄의 만남이었다. 댄은 매일같이 피자 박스를 문 앞에 놓으며 안부를 묻곤 한다. 문틈으로 찰리의 가쁜 호흡이 들릴 땐 진심으로 걱정해주기도 한다. “괜찮아요?” 서로에게 목소리로 존재할 뿐이지만 인간적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저녁, 그날도 댄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진 뒤 찰리가 문을 열고 피자를 향해 손을 뻗는다. 순간, 그는 댄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댄이 외마디 신음만 남긴 채 돌아서고, 찰리의 처연한 눈빛이 클로즈업된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폭식이 시작된 건 그로부터다.
댄은 선량한 사람이었을 터. 그런 그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찰리를 향해 미소를 띠었다면 어땠을까?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 건 익숙한 이들의 예측 가능한 반응이 아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반사적인 반응이다. 찰나의 표정이 내심의 평가를 가감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표정을 읽은 사람의 마음속은 지옥이 된다.
우린 어떠한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생김새가 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시선’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은가.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Please, be kind). 특히 뭐가 뭔지 모를 땐!”(‘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외침이 세상을 구하려면 다정함이 얄팍한 선량함에 그쳐선 안 되는 것 아닐까.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흔들림 없는 다정함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슈퍼 히어로가 아닌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인지 모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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