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잘 꿰었으니 완급 조절하며 여론 설득해야"[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장세정 2023. 3. 1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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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본 한·일 정상회담]
12년만에 '셔틀 외교' 복원은 성과
한·일 관계 진전의 좋은 계기 마련
과거담화 계승확인, 추가언급 없어
회담 한번으로 완전 해결엔 한계
4월 일본 지방 선거 등 변수 고려
반대 진영과 계속 소통·설득하길
장세정 논설위원

도쿄에 벚꽃이 핀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상으로는 12년 만에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일에 대해 외교·안보 전략가인 위성락(69)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장기간 경색됐던 한·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큰 걸음을 잘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기시다 총리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빈번하게 서로 방문하는 '셔틀 외교' 재개를 제안하자 윤 대통령이 환영한다고 화답해 셔틀 외교를 복원한 것을 성과로 꼽았다. 위 전 본부장은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확인했다고 두 번이나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며 "어렵게 마련한 대화의 모멘텀을 앞으로 계속 살려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외무고시 13회 출신으로 외교부에서 대표적 북미·북핵 통으로 손꼽혔던 위 전 본부장은 강제징용 등 한·일 현안에 대해 그동안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수차례 전향적 해법을 제시해왔다. 그는 한·일 관계 회복과 한·미·일 협력 강화를 촉구해왔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했으나 16일 한·일 정상회담 뒤 전화로 내용을 보충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은 징용 해법에 대한 국내의 반대 여론을 잘 설득하고, 일본과는 추가 협의를 통해 더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현동 기자

-이번 정상회담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면.

"정상회담으로 한·일 관계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강제징용 문제가 일단 해결되고 관계가 복원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2011년 이후 중단됐던 양국 정상의 셔틀 외교도 이번에 복원됐고, 시기는 못 박지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의 한국 답방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 등 양국 관계 진전의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환영할 일이다."
-가장 의미 있었거나 제일 주목한 장면이나 메시지는.

"기시다 총리가 두 번이나 개인적 신뢰 관계를 언급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고 중요한 메시지였다. 앞으로 현안을 푸는 데 좋은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식 만찬 이후에 오므라이스 전문 노포에서 2차 만찬 자리를 별도로 만들어 양국 정상끼리 아주 친밀하게 대화한 장면이 의미 있었고 특별히 눈에 띄었다."

-부족했거나 아쉬웠던 부분은.

"과거사 사과 수위에 대해 기시다 총리가 '1998년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일본 역대 내각의 과거사 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직접적 추가 언급이나 의미 있는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당초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수준이었다. 또 공동성명 없이 공동기자회견만 있었다고 해서 정상회담의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상회담 이후의 한·일 관계를 전망한다면.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앞으로 양국이 더 긴밀하게 대화·협의하고 미래 지향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길 기대한다. 다만 징용에 대한 국내의 반대 여론을 푸는 것은 윤 대통령에게 앞으로 남은 과제다."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함께 도쿄 긴자의 한 음식점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두 정상은 오므라이스 전문 노포에서 2차 만찬을 이어갔다. [연합뉴스]

-정상회담 당일 아침 북한이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한·일 안보 협력의 당위성이 부각됐다.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이 입을 모아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고 공동 대응과 안보 협력 강화에 의견 일치를 보였다. 그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수위가 계속 높아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정상화는 당연한 수순이라 본다."
-윤 대통령이 귀국 후에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대목은.
"이번 방문 이후에 정부가 방일 성과 홍보에 너무 성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고려할 때 오히려 진지하고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게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여론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렸다고 보나.
“일단 해결 과정으로 진입했다. 해결 과정을 터널에 비유하면 입구 부분이 아니라 절반 이상 많이 들어갔다고 본다. 일본이 볼 때는 한국 대법원 판결로 생긴 징용 문제는 이제 해소된 셈이 됐다. 강제징용 갈등은 한국 정부가 감당하고 해결할 문제가 됐다. 징용 대신 반일 감정이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은 내년 4월까지 큰 선거가 없지만, 일본은 오는 4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기시다 총리는 운신의 폭이 좁아 보인다. 향후 완급이나 속도 조절이 필요할까.

"정상회담 한 번으로 현안이 완전하게 해결될 수는 없다. 일본의 4월 선거 전에는 일본의 통 큰 양보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선거가 코 앞이라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 '구체적으로 사과하지 말라'는 주문이 강하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4월 지방 선거 이후까지 시야에 두고 선거 이후에 무엇을 좀 더 확보할 수 있을지 따져 봐야 한다. 완급과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10월 4일 일본 언론의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보도 장면. 북한은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아침 동해상으로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한일 정상은 이날 한 목소리로 비판했다. [EPA=연합뉴스]

-안보 협력에 추가할 것은.
"점증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중국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중·러의 밀착 접근 등 근래 주변 안보 상황 변화에 비춰 볼 때 지소미아 정상화는 물론이고,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 증대는 당연한 지향점이다. 쿼드(QUAD)와도 어떠한 형태로든 더 협력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한·일 관계 개선엔 찬성하면서도 이번 강제징용 해법에는 반대가 많다.
"그래서 진보·보수를 망라한 '초당적 현인 회의'를 만들어 해법을 도출하고 의견을 수렴하자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역대 정권이 듣지 않았다. 윤 정부 혼자서 해법을 만들고 밀고 가는 바람에 지금 60% 가까운 반대가 나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상 외교와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공조 강화 정책이 충분한 힘을 받기 어려워 보여 안타깝다."
-징용 문제는 문재인 정부도 풀지 못한 딜레마다.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우리 정부가 국내법(대법원 판결)과 국제법(한일 청구권 합의) 사이에 끼는 딜레마에 빠졌다. 국제 조약과 국내 판결 사이에서 문 정부는 국내법 편에 섰기에 일본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문희상안은 국내 판결과 거리가 있었다. 윤 정부안은 문희상안과 유사하지만 법제화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윤 정부가 할 수 없이 국내법 입장에 서지 않고 국제법에 가깝게 섰다고 본다. 윤 정부가 현실적인 방안을 택한 것은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 판결과 다른 안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반대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반대 진영과 협의하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강제징용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너무 서둘렀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내에 더 많이 설명하고 일본과 협의를 좀 달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일본이 4월 선거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4월 이후까지 협상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왜 우리 기업들의 돈으로 배상하는 것이 불가피한지를 최고위급이 나서서 정교한 논리로 국민을 설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정부 혼자 하면 해결이 안 된다. 이번에 제시한 해법을 놓고 국내 정치적 프로세스를 밟아야 했는데 그게 제로였다. 한·일 과거사처럼 아주 정치적인 문제를 극히 비정치적으로 다뤘다. 그 자리에 그냥 행정적 절차만 있었다."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해 도쿄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뒤늦게라도 여론을 수렴해 입법화 수순을 밟아야 할까.
"문희상안처럼 입법화를 하면 일부 피해자의 법적 이의 제기를 막을 수 있다. 입법화를 하려 했다면 윤 정부 집권 초기에 추진했어야 했다."
-강제징용 해법이 '제2의 위안부 합의'가 될 우려는 없나.
"진보 진영과 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법이 나왔다. 반대 여론이 높은 지금 묘안은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가 국내에서 반대 진영과 소통을 더 많이 해 국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일본과 지속해서 협의해 호응을 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4월 하순 미국 국빈방문, 5월 초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윤 대통령은 외교 무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강제징용 해법에 부정적인 여론 중 상당수는 한국이 미·일 주도의 구도에 과도하게 경도하는 것을 경계한다.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에 너무 양보한 채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의심이다. 정부는 이런 여론 흐름을 예민하게 보면서 신중하고 세련된 대응을 해야 한다. 드라이브를 너무 세게 걸면 정치적 역풍이 있을 수 있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 대해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평가하며 "일본의 지방 선거 등을 고려해 윤 대통령의 완급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정치권과 국민께 할 말이 있다면.
"이번 징용 해법이 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국론 분열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반일 국민 정서가 고조되는 건 국익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와 관료,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눈을 좀 돌리길 바란다. 강제징용 문제 대응 과정에서 정부도 정치권도 사법부도 약점을 노출했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고쳐야 일본 앞에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다. 좀 더 지혜롭게 좀 더 유능한 외교를 할 새로운 계기로 삼으면 좋겠다."
※김아영 인턴기자가 인터뷰 정리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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