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1호 ‘포수 빅리거’…아버지 못 이룬 꿈 내가 이룬다
한국 야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찌감치 예선 탈락했다. 세대교체를 위해 유망주를 발굴하는 한편 선수들의 기본기부터 다시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미국으로 건너간 포수 엄형찬(19)은 훗날 태극마크를 달고 WBC 출전을 꿈꾼다.
엄형찬은 경기상고 3학년이던 지난해 7월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을 발표했다. 물론 당장 1군 무대에 진출하는 건 아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하게 기본기를 다지면서 빅리그에 도전하기로 했다. 듬직한 체격 덕분에 포수로서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캔자스시티는 또 엄형찬의 타격 실력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경기상고 시절 59경기에 나와 타율 0.353(207타수 73안타)를 기록했다. 수비를 가다듬으면 대형 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는 현재 미국 애리조나의 캔자스시티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몸을 만들고 있다. 출국하기 전 모교인 경기상고에서 엄형찬을 만나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각오를 들어봤다.
엄형찬은 “얼마 전 졸업식을 했다. 드디어 미국 생활이 현실로 다가왔다.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다”며 “많은 걸 배우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캔자스시티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스프링캠프를 차리면서 엄형찬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캔자스시티 캠프에선 메이저리거와 마이너리거가 함께 훈련을 한다. 엄형찬은 “지난해 미국 교육리그에 참가해보니 확실히 서양 선수들의 체격이 뛰어나더라. 그래서 지난 겨울 웨이트트레이닝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떻게든 자리를 잡으려면 몸을 불려야겠다고 생각해서 근육을 키웠다. 체중도 83㎏에서 87㎏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대를 이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엄형찬 부자(父子)의 도전 스토리도 화제를 모은다. 그의 아버지인 엄종수(50) 경기상고 배터리 코치는 프로야구 포수 출신이다. 1996년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러나 한화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2년 뒤 방출됐다. 중학교 코치로 일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2000년 미국 마이너리그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 무대의 벽은 역시 높았다. 특히 포수 포지션에선 도전이 쉽지 않았다. 눈물 젖은 빵을 먹던 그는 1년 만에 마이너리그 선수 생활을 접고 돌아왔다.
엄종수-엄형찬 부자의 메이저리그 도전 스토리는 미국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MLB닷컴은 최근 “엄종수와 엄형찬은 한국 최초로 부자 마이너리거가 됐다”고 소개했다. 엄 코치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식을 미국에 혼자 보내니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지난해 교육리그를 무사히 다녀온 걸 보면서 기특한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엄형찬은 어릴 적부터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웠다. 일찌감치 영어 공부를 하면서 차분하게 미국 진출을 준비했다. TV로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챙겨보며 영어를 익혔다. 덕분에 지난해 교육리그에서는 큰 문제 없이 동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한국 야구는 그동안 박찬호(50)를 비롯해 김병현(44)·최희섭(44)·추신수(41)·류현진(36)·최지만(32)·김하성(28) 등 여러 명의 메이저리거를 배출했다. 그러나 아직 포수 마스크를 쓰고 빅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는 없다. 엄형찬이 성장해서 캔자스시티 안방을 책임진다면,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포수 빅리거가 탄생하는 셈이다.
엄형찬은 “투수와 야수 출신 메이저리거는 적지 않은데 왜 포수 빅리거는 없을까 혼자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서 “1군 무대에 오르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빅리그에 도전했던 아버지의 경험도 내게는 동기부여가 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 꼭 한국인 포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엄형찬은…
「 생년월일 : 2004년 4월 24일
출신교 : 성동초-덕수중-경기상고
체격: 키 1m83㎝, 몸무게 87㎏
포지션(투타) : 포수(우투우타)
고교 성적 : 59경기 타율 0.353(207타수 73안타) 61타점 47득점
수상 경력 : 2022년 고교야구 주말리그 후반기 서울권C 타격상·홈런상·타점상
롤모델 : 아버지 엄종수 경기상고 배터리코치
」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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