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할까

김초혜 2023. 3. 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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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우러나길 기다린다. 티룸에서 찾은 고요한 마음과 정취.
「 WHBOY 」
@whtea_seoul

휘영청 뜬 보름달 아래서 보이차를 즐기는 낭만을 그대로 간직한 ‘월하보이’.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벽면에 남아 있는 경기고등학교의 120년 된 축대다. 오래된 건물의 뼈대가 살아 숨 쉬는 공간에 박서보 · 윤형근의 작품과 베르너 판톤 VP 글로브 조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깨지거나 갈라진 도자기 틈을 옻으로 채우고 금이나 은으로 장식하는 긴쓰기 잔 혹은 1950년에 만들어진 빈티지 잔에 보이차를 담아 마시면 잔에 켜켜이 쌓인 세월을 상상하게 된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보이차는 싱그러운 녹차 맛과 함께 우롱차의 꿀 향과 꽃 향이 느껴지고, 20~30년 된 보이차는 홍차 이상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 TOVE 」
@room.tove

새빨간 테이블과 샛노란 트레이. 중국어로 ‘특별한’이라는 이름의 ‘토오베’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로라빛, 핑크빛 다기에 찻잎을 우려 내놓는다. 현대적인 차 생활을 고민하는 토오베가 이스트스모크, 나이트프루티 등 젊은 공예 작가들과 협업해 만든 다기는 컬러플한 색과 독특한 질감이 돋보인다. 봄의 아침을 닮은 조춘사계춘과 견과류의 고소함이 느껴지는 구페이 등 다양한 우롱차를 맛볼 수 있는 게 특징. 특히 직접 개발한 다식 ‘레몬 젤리’는 부드러운 우유 향이 나는 밀키 우롱과 잘 어울려 입문자들에게 인기다. 위스키를 한 잔 시키면 차 한 잔을 함께 내주는 메뉴 역시 차 경험을 확장시키는 토오베식의 제안.

「 MAGPIE AND TIGER 」
@magpie.and.tiger

오직 물 끓는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동아시아의 차와 다기를 소개하는 ‘맥파이앤타이거 신사’는 나무, 돌, 흙 등 자연과 가까운 집기와 낮은 조도로 차에 몰두할 수 있다. 장식적이지 않은 티 플레이트는 복잡한 도심 속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쉼터가 된다. 현미와 녹차를 블렌딩한 목련현미녹차가 유리 다관에서 천천히 우러나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지난해 11월 오픈한 성수 티룸보다 일상적 차 문화를 소개하는 곳으로, 신사 티룸과 달리 예약 없이도 방문할 수 있는 곳. ‘맥파이앤타이거’가 토림도예와 함께 만든 까슬한 질감의 무유개완으로 차를 우리는 일은 촉감을 깨운다.

「 DELPHIC 」
@delphic_official

평화로운 북촌의 한옥 사이를 걷다 보면 모던한 건물 한 채가 등장한다. 유수진 대표가 유년시절 자신이 20년간 살던 집을 재구성한 공간이다. 1층은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뮤지엄헤드를, 2층은 티하우스 ‘델픽’을 만들어 공개했다. 말간 찻잔에 델픽의 차 연구원이 직접 블렌딩한 차와 프리미엄 녹차, 홍차 등을 맛볼 수 있다. 델픽의 티 플레이트는 소박하고 정갈하다. 일상 어디에나 잘 어우러지는 간결한 다기는 한 잔의 차가 건네는 위로를 투명하게 담았다. 커다란 창 앞의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허상욱 · 박성욱 · 최민록 등 한국 공예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데, 이는 많은 사람이 예술과 찻자리에 연결된 일상을 보내길 바라는 델픽의 정체성과 닮았다.

「 OMOT 」
@_OMOT_

무채색 공간. 은은한 조명 아래 새까만 바 테이블 위로 조용히 티 플레이트가 내어진다. 약 75분간 진행하는 ‘오므오트’의 티 세레모니는 다섯 개의 차와 다식이 차례로 나온다. 김혜지 대표는 한국의 차 문화가 그 역사와 품질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지금의 공간을 만들었다. 티 세레모니는 절기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는데, 각각의 티 플레이트에는 차의 맛과 향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다. 도자는 갤러리 소소단상의 한국 작가들이 직접 만든 작품으로 매번 색다르게 구성한다. 이번 절기는 강원도 강진의 특별한 차만 모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가진 이한영 차 문화원 백운차실의 백운옥판차와 다산 정약용이 직접 연구한 다산 정차를 맛볼 수 있다. 차와 차 사이의 향과 맛을 더욱 깊게 만들어줄 촘촘한 구성은 한국의 계절과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 TEAHOUSE HADA 」
@teahouse_hada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마음 한구석에 평화가 찾아온다. ‘티하우스하다’는 차를 향유하는 전시와 수업, 명상, 차회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김민아 대표는 일본에서 도쿄 오모테산도의 찻집에 앉은 회사원이 아주 자그마한 잔에 옥로차를 마시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고 ‘도심 속에 쉼표를 찍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이곳을 열었다. 고요한 입구에서 차실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일본의 고즈넉한 골목과 닮았고, 이를 따라 들어가면 청마 유태근의 도자가 여백미를 품은 채 놓여 있다. 찻자리에는 흙의 본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작가 은작기림 은성민의 작품이 오른다. 연약하고 불안정한 형태에서 자연스러움과 인간성이 느껴지는 작품은 스스로를 직면하는 다도를 깊은 심연의 세계로 이끈다. 은상민의 다기와 차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화상’은 4월 중 오픈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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