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관계 조속히 회복·발전”…경제안보 협의체 출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16일 한·일 관계를 조속히 회복·발전시키기로 공감대를 이뤘다. 양국은 이를 위한 경제·안보 협의체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정례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하는 셔틀 외교를 재개하자는 데도 의견 일치를 봤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오후 6시 31분 일본 총리 관저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빨간색, 기시다 총리는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연단에 섰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번 주 도쿄에서는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며 “긴 겨울철을 벗어나 양자 회담을 위한 방문으로서는 약 12년 만에 한국의 대통령을 일본에 모시게 됐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우호 협력 관계에 기반해서 양국 관계를 더욱더 발전시켜 나가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고 말했다.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에 대해 “일본 정부로서는 이 조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한·일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제로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는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란 문구가 담겨 있다. 이 선언은 한국의 식민지 지배만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첫 사죄 표명이었는데, 기시다 총리가 이에 대한 ‘계승’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앞으로 조치 실시와 함께 양국 간 정치·경제·문화 등의 분야에서 교류가 힘차게 확대해나갈 것을 기대한다”며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 그러기 위해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주 방문하는 셔틀외교를 재개시키는 데 일치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지금까지 오랜 기간 중단됐던 한·일 안전보장 대화, 한·일 차관 전략대화를 조기에 재개하겠다”며 “고위급 한·중·일 프로세스의 조기 재가동의 중요성에도 일치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새롭게 한·일 간 경제 안전보장에 관한 협의체를 출범시킨다. 앞으로 각 정책 분야에서 정부 부처 간 대화를 폭넓게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에 대해 “자유·인권·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기시다 총리는 그간 얼어붙은 양국관계로 인해 양국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손해를 입어왔다는 데 공감하고, 한·일 관계를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자는데 뜻을 같이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안보, 경제, 인적·문화 교류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증진하는 논의를 가속하기로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경제안보와 첨단과학뿐 아니라 금융·외환 분야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 나가기로 했다”며 “외교, 경제 당국 간 전략대화를 비롯해 양국의 공동 이익을 논의하는 협의체들을 조속히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 대화’를 출범시킨다고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선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발전 방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일본의 수출규제 해제,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철회, 양국 재계의 ‘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 설립 등도 거론했다.
대북 공조와 관련해선 “고도화되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한·일 공조가 매우 중요하고 앞으로 적극 협력해 나가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면서 한·일 각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긴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양 정상은 이어 언론과의 질의응답을 가졌다. 한·일 기자 각 1명이 양국 정상에게 한 차례씩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일본 기자= “한국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결책에 대해 양국 정상에게 질문한다. 또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언제쯤 생각하나.”
▶기시다 총리= “(이번 윤 대통령 방문이) 그야말로 첫 번째, 제1탄이라고 보면 된다. 적절한 시기에 대해 앞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다만, 지금 구체적인 시점은 정해진 바 없다. 첫 번째 질문(강제징용 문제)에 답변하자면, 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이번에 한국 재단이 대금을 지급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금번 조치의 취지에 따라 구상권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윤 대통령= “만약, 구상권이 행사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시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구상권 행사라는 것은, 판결 해법을 발표한 취지와 관련해서 상정하고 있지 않다.”
▶한국 기자= “윤 대통령은 평소 국익을 많이 강조했다. 이번 방일에서 국익이 무엇인가. 국민을 만족하게 할 만한 수준인가. 기시다 총리에게는 한국의 노력에 비해 일본 측의 호응 조치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많다. 이를 호전시키기 위해 기시다가 직접 하거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나.”
▶윤 대통령= “한국의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정상회담에서 지소미아 완전 정상화를 선언했다. 그래서 북핵 미사일의 발사와 항적에 대한 정보를 양국이 공유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시다 총리= “일본의 호응 조치에 대해 질문했는데, 오늘도 그와 관련해 여러 가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이 자주 연계해서 하나씩 구체적인 결과를 내 나가고 싶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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