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한 편으로 책 한 권을 만든다고?

김남중 2023. 3. 1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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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새로운 실험’ 성공할까
200자 원고지 60매 분량의 짧은 소설 ‘젊은 남자’를 출간한 노벨문학상 작가 아니 에르노. 오른쪽은 구병모 작가로 신작 ‘파쇄’를 단편소설 한 편을 책 한 권으로 내는 ‘위픽 시리즈’ 1권으로 선보였다. 국민일보DB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83)의 최신작 ‘젊은 남자’가 출간됐다. 지난해 6월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된 이 소설은 작가가 50대에 경험한 젊은 남성과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5년 전, 한 대학생과 어설픈 밤을 보냈다… 그는 나보다 서른 살 가까이 어렸다.”

에르노는 자신의 체험을 용감하게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 ‘젊은 남자’에서 작가는 왜 20대 대학생과의 연애에 빠져들었는지, 그 연애가 그에게 어떤 생각과 느낌들을 가져다 주었는지, 그들의 연애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어떠했으며 그 시선들을 느끼면서 둘은 어떤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 그리고 그 연애가 어떻게 끝났는지 등에 대해 섬세하게 얘기한다.

작가는 50대 남자들은 딸뻘 되는 젊은 여자와 연애해도 아무런 지탄을 받지 않는다면서 자신이 아들뻘 되는 남자와 연애하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에르노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짧다. 한글로 번역된 본문이 200자 원고지로 60매 분량이다. 시집 사이즈로 판형을 줄였는데도 분문이 31쪽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는 48쪽으로 된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레모 출판사는 단편소설 한 편 분량에도 못 미치는 이 짧은 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내도 될지 고심했다고 한다. 윤석헌 레모 대표는 “그대로 책을 만들면 책등(책의 옆면)이 안 만들어질 정도로 얇았다. 책값을 책정하기도 어려웠다”면서 “그래서 프랑스어 원문을 수록하고 작가연보도 넣어서 볼륨을 112쪽으로 늘렸다. 또 노벨문학상 연설문을 부록으로 제작해 책과 함께 제공했다”고 말했다.

구병모 작가의 새 소설 ‘파쇄’도 시집 크기에 88쪽 분량의 얇은 책으로 이번 주 출간됐다. 예순다섯의 여성 킬러라는 이색적 캐릭터를 앞세운 구 작가의 대표작 ‘파과’의 외전에 해당하는 단편이다. 주인공이 십대 시절 한 남자에 의해 킬러로 훈련되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 소설은 위즈덤하우스 출판사가 단편소설 한 편을 책 한 권으로 출판하는 ‘위픽 시리즈’ 1권이다. ‘파쇄’를 비롯해 ‘마유미’(이희주), ‘할매 떡볶이 레시피’(윤자영), ‘북적대지만 은밀하게’(박소연), ‘크리마스이브의 방문객’(김기창) 등 다섯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이 책들은 짧은 것은 68쪽, 길어야 120쪽에 불과하다.


위즈덤하우스는 위픽 시리즈에 대해 “단편소설 하나만으로는 책이 될 수 없을까”에 대한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단편소설은 여러 편을 묶어 소설집 형식으로 출간됐다. 작가가 소설을 완성한 시점으로부터 짧아야 2∼3년 후에나 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위픽 시리즈는 단편이 완성되면 3주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그로부터 석 달만에 책으로 낸다. 출판사는 앞으로 매월 둘째 수요일에 4종씩, 1년간 총 50종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편소설을 책 한 권으로 출간하는 시도는 소설을 안 쓰던 작가들도 소설 쓰기로 초대할 수 있다. 비소설 작가들의 경우, 단편소설을 계속 생산하긴 어렵겠지만 한 편 정도라면 도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위픽 시리즈는 논픽션 작가 정혜윤 김원영, 시인 이소호 등의 단편소설을 출간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지는 지켜볼 문제다. 무엇보다 가격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위픽 시리즈 한 권은 1만3000원이다. 아르노의 ‘젊은 남자’는 1만5000원. 단편소설 5∼9편이 수록되는 소설집 한 권 가격은 1만5000원∼2만원 수준이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출판본부장은 “시리즈를 기획하며 젊은 한국문학 독자들을 깊게 조사했다”면서 “젊은 독자들은 책의 가격이나 분량, 형식 등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야기 자체가 매력이 있으면 얇아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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