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노동자는 왜 ‘아마존 보존’ 상징이 됐나?

김남중 2023. 3. 1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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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나, 치코 멘데스-숲을 위해 싸우다
치코 멘데스·토니 그로스 지음
이중근·이푸른 옮김
틈새의시간, 232쪽, 1만7000원
‘아마존 열대우림의 수호자’로 불리는 치코 멘데스의 가족 사진들. 위는 치코 멘데스와 아내, 아래는 그와 아들들이다. 치코 멘데스는 1988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집에 들렀다가 목장주들이 고용한 총잡이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틈새의시간 제공

열대우림은 지구의 육지 표면적에서 7%를 차지할 뿐이지만 전 세계 동·식물 종의 약 40∼80%가 서식한다. 현재 남아 있는 열대우림의 60% 정도는 라틴아메리카에 분포하는데 ‘아마존’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그 곳이다.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성한다. 또 지구에서 바다 다음으로 탄소를 가장 많이 빨아들이는 게 아마존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을 보호하는 일은 전지구적 과제가 되었다. 아마존 개발을 강행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르와 아마존 보존을 내건 룰라가 맞붙은 지난해 브라질 대통령 선거가 ‘기후대선’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존 숲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은 소를 방목하기 위해 목초지를 무분별하게 개간하는 삼림 벌목에 있다. 아마존에서 행해지는 환경 파괴는 도로를 따라 이루어진다. 도로가 먼저 뚫리고, 도로 주변으로 가축 목장 주인들이 몰려들어 숲을 개간하고 농장을 세운다. 아마존에 장거리 도로를 건설하며 시작된 파괴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존 삼림 개간은 숲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숲에서 고무 채취 노동을 해온 노동자들과 인디언 선주민들의 삶도 파괴한다.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후반 사이,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크리계곡은 도로가 놓이고, 목장주가 고무 농장을 매각하면서 점차 숲에서 목초지로 변해갔다. 고무 채취 노동자들은 대놓고 떠나라는 협박을 받거나, 모욕적인 수준의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물리적 힘에 의해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겼고, 숲은 기어이 개간되었다.”

치코 멘데스는 못배우고 가난한 고무 채취 노동자였다. 브라질 북서부 아크리주의 먼 구석, 볼리비아 국경에 인접한 샤푸리에서 1944년 태어났다. 한 노동운동가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고 현실을 각성한 그는 20대부터 지역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샤푸리 농촌노동자 노동조합 회장이자 전국 고무 채취 노동자협의회의 실질적 리더였다.


그는 노동자들을 교육·조직하고 선주민들과 연대해 아마존 우림을 파괴하는 지주 및 정치권력과 맞섰다. 아마존 숲을 벌채와 광산 추출을 금지하는 ‘채굴 보존 지역(RESEX)’으로 지정하자고 요구하고, 노동자와 선주민들이 숲에서 쫓겨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길 바랐다.

“1975년부터 브라질레이아와 샤푸리 지역 고무 채취 노동자들은 마흔다섯 번의 엠파치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시위에 참여한 400명 정도가 체포당하고, 40건의 고문이 있었으며, 일부 동료는 암살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의 저항으로 120만㏊(영국 영토의 5% 정도) 이상의 숲을 지켜냈다. 우리는 열다섯 번 승리했고 또 서른 번 패배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엠파치는 고무 채취 노동자들이 고안한 평화 시위 전술이다. 사람들이 모여 벌목이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지역을 사슬 형태로 둘러싸서 작업을 중단시킨다.

목장주와 그 비호 세력들은 개발을 가로막고 권력에 도전하는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1988년 마흔네 살의 치코 멘데스는 지주들이 고용한 총잡이들에 의해 집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전 세계로 타전되며 아마존 보존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만들어냈다.

치코 멘데스의 이름은 아마존에 지정된 채굴 보존 지역의 또 다른 이름인 ‘치코 멘데스 보호구역’에, 룰라가 2002년 처음 대통령이 당선된 후 신설한 아마존 담당 부처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치코 멘데스 연구소’에, 세계적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이 1989년 제정한 ‘치코 멘데스 상’에 남아 있다.

1994년 미국에서 제작된 TV영화 ‘버닝 시즌(The Burning Season)’, 칠레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대표작 ‘연애소설 읽는 남자’, 폴 매카트니의 노래 ‘하우 매니 피플(How Many People)’ 등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작품들이다.

‘나, 치코 멘데스-숲을 위해 싸우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치코 멘데스의 책이다. 아마존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토니 그로스가 친구이기도 했던 치코 멘데스의 생전 구술을 정리했다.

이 책은 아마존 보존 운동의 시초가 됐던 한 인물에 대한 일대기일뿐만 아니라 1960년대 이후 브라질 현대사로도 읽을 수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한 아마존 고무 산업의 역사, 열대우림을 둘러싼 개발과 보존의 갈등, 브라질 정치사 등을 상세하게 해설한다.

저자가 무엇보다 공들여 쓴 것은 변방의 시골에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풀뿌리 운동이 노조, 지역, 환경, 정치 등을 포괄하며 한 국가의 방향을 바꾸고 세계 환경운동의 이정표를 세워나간 과정이다. 치코 멘데스의 투쟁은 숲을 지키는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었지만, 브라질의 지배권력 전체와 맞서는 급진적 계급운동이자 정치운동이었다. 현재의 안일한 기후·환경운동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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