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같은 산불'로 전 대원 비상소집... 10년 만에 처음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창경 기자]
'윙윙' 대는 바람 소리가 영 거슬리게 들리는 봄이다. 저 바람이 꽃봉오리를 부풀리고 씨앗을 날리는 꽃바람만으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지난주 연속 3일 동안 산불 화재 현장에 출동하면서부터였다. 대기에 수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잡초들은 바짝 말라 있었고 산속에 몇 년 동안 쌓인 낙엽층은 두꺼웠다. 봄 한낮의 햇볕으로도 자연 발화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
▲ 충남 부여군 옥산면 산불 현장 충남 부여군 옥산면 산불 현장에 소방 헬기가 투입되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
ⓒ 오창경 |
의용소방대 단톡방에 다시 한번 출동 문자를 올리고 마트에 들러 생수와 장갑 등을 사서 차에 실었다. 남성 의용소방대원들이 화재 현장에서 119 대원들과 화재를 진압한다면 여성 의용소방대원들은 물과 장갑, 간식거리 등을 지원하고 현장 주변 교통정리 등의 일을 한다.
부여군 비상 1단계 발령으로 전 소방대원과 의용 소방대원들의 비상 소집은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한 지난 1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봄바람에 불티가 날아다니며 주변 산으로 번지는 모양새가 심각한 모양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발생한 산불 때문에 3일 연속 화재 현장에 출동한 직후여서 휴대폰 문자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지 않던 차였다.
|
▲ 산불 현장에 투입된 의용소방대원들과 소방대원들 3일동안 불씨가 살아났던 옥산면 산불 현장. |
ⓒ 오창경 |
산불 진화대원들이 등짐 펌프를 지고 선두에 서고, 산 아래쪽에서는 물 호스를 잡으며 소방 관계자들이 총동원되지만, 바람이 한번 일어나면 불티는 불쑥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꽃으로 피어오른다. 그쪽으로 진화 인력들이 우르르 몰려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우르르 쏠리며 도깨비불 잡기를 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소방 헬기가 근처 저수지에서 물을 담아 와서 폭우처럼 물을 쏟아붓는다.
내가 옥산면 쪽으로 들어섰을 때 옥산 저수지에서 물을 담고 있는 헬기부터 눈에 띄었다. 뒤이어 서너 대의 헬기가 연속으로 옥산 저수지로 날아왔다가 매캐한 연기가 나는 현장으로 날고 있었다. 산불의 규모가 넓은 모양이었다.
"봄 불은 여시(여우)불이여. 이쪽에서 끄면 저쪽에서 불길이 살아나서 잡기가 쉽간디... 쯔쯧."
산불이 마을로 내려올 조짐이 보이고 마을 사람들도 대피를 걱정하며 모여 있었다. 산불 현장 주변은 구경하는 사람들과 의소대원들, 공무원들, 구조대원들과 각종 소방 장비 차량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접한 지역의 첨단 장비들을 장착한 차량도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적십자 대원들과 적십자 로고가 찍힌 탑차까지 왔다.
|
▲ 의용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를 잡아주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의용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를 잡아서 산불 진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
ⓒ 오창경 |
|
▲ 산불 현장 지휘본부의 모니터 산불 현장에 드론을 띄워 잔불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
ⓒ 오창경 |
동네 사람들 속에서 이런 말들이 들렸다. 화재 원인의 대부분은 실화와 방심이다.들깻대와 콩대 등은 예전 같으면 불쏘시개가 되어 부엌 아궁이에서 진작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 무렵 마을마다 동화제, 달집 태우기 등을 하는 뜻은 그런 농사의 잔여물을 안전하게 태우기 위한 것이었다. 단지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위하는 의식일뿐만 아니라 농사의 잔여물을 깨끗하게 처리하고 새로 농사를 준비하는 의미도 있었다.
마을의 동화제가 점차 사라지고 불 때는 아궁이도 없어지면서 농촌에서는 농사 잔여물 처리가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산불 감시원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밭에서 잔여물들을 태우는 사람들이 생겼다. 옥산면에서 일어난 산불도 새벽에 태운 들깻대에서 숨어있던 불씨가 바람에 발화되어 산으로 올라간 것이 원인이었다.
산불이 발생한 산은 하필이면 부여군에서도 진달래 군락으로 유명한 곳이라 축제도 열고 등산 코스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막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던 진달래꽃들을 앞으로 몇 년은 못 볼 수 없을 것 같다.
소방 헬기가 날아와 물을 붓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산불은 어느 정도 잡히기 마련이었다. 큰불이 잡히고 나면 소방대원들과 산불 진화대, 의소대원들의 활약이 시작된다. 잔불을 정리하고 불길을 차단하는 손길과 발길이 바빠진다.
하지만 지난주 (충남 부여군) 옥산면 옥녀봉 근처에서 일어난 산불은 소방헬기가 7대가 동원되고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으로 불길이 일어날 만한 곳을 미리 감지해서 인력을 투입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봄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이 사람들의 모자를 벗기고 옷자락을 들썩이며 지나갈 때마다 산에도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소방 헬기도 해가 지면 날지를 못하고 야간에는 인력 투입도 어렵기 때문에 해가 있을 때 어느 정도 불길을 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해는 저물고 불길을 잡던 대원들이 지쳐서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람도 지쳐서 그만 쉬기를 바랐지만 산불 진화 대원들이 전하는 말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워낙 비가 오지 않았잖유. 낙엽을 긁어다 불 때는 사람두 없구유."
여수(여우) 같은 불과 싸우다 내려온 진화 대원들에게 그날은 생수와 컵라면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불이 완전히 꺼진 게 아녀서 이런 거 먹기도 편치 않네유."
|
▲ 재발화한 산불 불씨가 살아나 재발화한 산불. 야간에 발생한 산불은 진화하기가 쉽지 않다. |
ⓒ 오창경 |
오늘도 봄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 바람 속에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와 출동 문자가 함께 오는 대신 넉넉한 봄비가 내려 바짝 마른 대지를 적셔주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추모를 암매장... 세월호 때처럼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
- "MZ세대는 주69시간 선호" 국힘 주장은 '대체로 거짓'
- 낯선 속옷이 내 집 현관문에...가해자의 소름 돋는 질문
- 사회수석 "윤 대통령, '주60시간 이상 무리' 인식 갖고 있어"
- 밥 적게 먹겠다는 아이들에 쏟아진 후원금... 첫 지출은 '짜장면'
- 11살 맞은 '규슈올레' 206km, 11년만에 53만명이 걸었다
- '퇴진 압박' 잠재운 이재명... 그러나 남아있는 불씨
- 박홍근 "주 69시간제는 살인근무제... 원점 재검토해야"
- 북 탄도미사일 발사... 윤 대통령 "무모한 도발, 대가 치를 것"
- 윤 대통령 "한일, 갈등 넘어 미래로 가는 '기회의 창' 함께 열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