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 ‘사면초가’…약도 없는 병원·여성은 폭력 노출
인구 42% 영양실조, 병원은 난방 없어 환재 돌려보내
“가정·장마당·교화소서 여성은 폭력 피할 길 없어”
북한의 열악한 식량·보건 상황과 북한 여성들의 인권문제를 다룬 보고서가 지난 9일 유엔 인권이사회(UNHRC)를 통해 공개됐다. 2014년 2월 첫 보고서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한 두 번째 북한 인권보고서다.
엘리자베스 살몬(Elizabeth Salmón)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9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 인구의 41.6%가 식량 부족에 따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여성들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자료에 따르면 북한 인구 중 식량 부족에 따른 불안을 겪는 비율이 코로나19 이전 40%에서 2021년 말 60%로 20% 포인트나 급증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그 결과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북한 인구의 41.6%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실조에 시달린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건 하루 단 한 끼뿐”면서 “세 끼를 먹는 일은 대부분 가정에서 사치가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옥수수와 식용유를 비롯한 식품 가격이 급등했는데 특히 농촌 지역이 이 같은 변화에 취약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는 극심한 가뭄과 폭우, 비료 등 부족이 겹치면서 수확량이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도 심각한 식량난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식품 가격 인상을 통제하거나 곡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정책적 논의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부는 군인의 식량 배급량도 620g에서 580g으로 줄이는 등 긴축에 나선 바 있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북한이 장기간 이어지는 식량난을 해결하려면 국제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정부가 정치적 입장을 배제하고 국제 사회와 협력해 식량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병원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이 직접 약물이나 의료용품을 구해서 가져와야 하는 수준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 북한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불법적인 의약품 생산 및 판매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마련했다.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은 이러한 의약품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었는데 정부의 규제로 시장 공급에 제동이 걸리며 문제가 심화했다”고 썼다.
북한 지방의 병원들은 올해 1월 난방 연료 부족으로 응급 환자들을 제외하고 모두 퇴원시킨 것으로 보고됐다. 전국 학교의 50%와 보육원 38%는 식수와 위생시설이 부족해 아동과 청소년이 위생 문제에 노출돼 있음을 보고서는 지적했다.
여성 인권 현실은 북한이 밝힌 것과 달리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살몬 특별보고관은 “인권 분석에 성인지 감수성은 필수적”이라며 “이를 통해 인권 유린이 서로 다른 젠더에게 어떻게 다르게 경험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북한은 2016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보고서를 제출하며 “대학 진학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있고, 여성의 노동 환경이 개선됐으며, 더 많은 여성이 정부 지도자 자리에 임명되고 있다” “북조선은 오래전에 성평등을 이뤘다” 등의 내용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가 파악한 북한 여성 인권의 현실은 달랐다. 북한의 산모 사망률은 2017년 10만명 당 89명에서 2020년 107명으로 증가했다. 여성들의 생리기간 중 위생환경과 휴식 등에 대해 북한 사회 안에서는 논의되지 않는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낙태 역시 규제 범위가 불분명하고 명확한 관련 법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 장마당에서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여성권리보장법 제46조는 “모든 형태의 가정폭력”을 금지하지만, 가해자 처벌보다는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부간 성폭행도 범죄가 아니다.
장마당은 여성들이 노동 기회를 얻고 재정적 자율성을 개선하는 배경이 됐지만, 북한이 최근 통제 수위를 높이면서 관리들이 상행위 통제를 명분으로 강제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이 이에 저항하면 시장 접근권을 잃는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탈북을 시도하다가 교화소에 수감된 여성들은 영양실조와 성폭력의 위협에 놓인다. 보고서는 탈북자의 증언을 인용해 “한 임신부 수감자는 음식이 없어 개 사료를 훔쳐 먹었다”며 “임신한 여성들은 수감생활 동안 강제로 낙태하고 고된 노동을 강행한다”고 전했다. 또 비영리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조사를 인용해 “인터뷰를 통해 전해진 총 586건의 여성 성폭력 사건 가운데 270건이 수용시설 내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탈북 여성은 또한 중국 남성과의 강제결혼이나 성 산업에 내몰리기도 한다고 보고서는 썼다.
다만 보고서는 코로나19 방역으로 폐쇄성이 높아지면서 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북한이 2020년 초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한 뒤 탈북자 수가 크게 줄어든 까닭에 신뢰할 정보를 수집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언급된 여러 인권침해 사례들은 북한 인권 전문 매체의 보도나 탈북자 관련 논문, 탈북자 인터뷰 등에서 인용됐다.
엘리자베스 살몬 특별보고관은 보고서를 통해 “북한은 모든 여성을 폭력에서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필요한 법률을 제정 및 시행하며, (피해 여성의) 회복과 재활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가해자를 제재하고 피해자를 구제할 의무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여성 인권이 더 잘 보장되고, (북한의) 여성권리보장법과 국제적인 법적 수단이 일치하도록 하려면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의 직접적인 소통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은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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