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의 ESG 인사이트] 국민연금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어라?

이상재 2023. 3. 1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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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일반인의 경우, “우선 냉장고 문을 연다. 다음으로 코끼리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냉장고 문을 닫는다.”

직업에 따라서는 어떻게 다를까. “교수는 조교에게 시킨다. 의사는 인턴에게 시킨다. 경찰은 토끼를 코끼리라 진술케 하여 넣는다.” 오래전 유행했던 허무개그 한 토막이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작년 한 해 마이너스 8.22%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998년 국민연금 기금 설치 이후 최악의 연간 운용 성적표다.

이럴 때 정부 대책은 어떨까. “주무 부처인 복지부는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꾸린다. 수익률 제고 방안 용역을 발주한다. 일군의 연금 주변 학자들이 해당 용역을 수행한다. 공청회를 연다. 국민연금 수익률 개선을 위한 로드맵이 확정 발표된다. 끝?”

일반적인 문제는 어떤 해결 단계를 거칠까. 문제 해결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 공유, 그 목적과 기간 및 방향성 등에 대한 합의, 문제점들에 대한 정확하고도 냉철한 진단, 예산 및 인력 배치가 포함된 치밀하고도 실용적 해법 제시, 이미 수립된 계획들을 실행해 성과를 내는 순서일 것이다. 여기까지 진행돼야 작업의 진정한 ‘끝’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 해결 단계들을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 개선 이슈에 적용해 보자.

첫째, 이해 관계자들 간 문제의식의 공유다.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연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은 4.8%(2021~2030년)로 가정됐고 이후 10년마다 0.1%포인트씩 떨어진다. 이럴 경우 기금은 2041년 1778조원을 기록한 후 2042년부터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57년에 소진된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 4.2%에 머문다면 그 예측은 달라진다. 연금 제도의 여타 조건들이 불변할 때 0.6%포인트 격차로 인해, 연금 피크 규모 및 그 소진 시기 등이 앞당겨진다. 따라서 연금 조기 고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연금 제도뿐만 아니라 기금운용 수익률 개선의 당위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사실 이 기금 고갈 및 수익률 제고를 놓고도 진보와 보수 진영 간 인식 차이가 매우 크다. 보수 진영은 해외 선진 연기금들의 사례를 들어 금융 투자의 원리에 따라 900조원 기금이 운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운용 수익률 1%포인트만 높아져도 그 고갈 시점은 9년 늦춰진다는 근거도 내세운다.

반면 진보 진영은 기금 고갈론을 제기하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정부가 고갈론을 보험료율 인상 등 제도 개혁의 빌미로 삼을 뿐 아니라, 기금으로 채권‧주식‧부동산 투기를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현재 국내 공적 연금 총지출 규모는 GDP의 3.7%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고, 2040년 연금 수지 적자가 발생해도 GDP의 7.8%에 불과함으로 OECD 평균 10.2%보다 낮다고도 말한다.

둘째, 기금 고갈 지연의 당위성에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목적 등에 대한 합의 문제가 또 남는다. 연금 기금의 목표 수익률과 그 목표 시계(視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그것이다. 연금의 목표수익률은 대부분 전략적 자산배분(Strategic Asset Allocation, ‘SAA’)에 의해 결정된다. ‘SAA’란 수익의 원천이자 ‘위험·수익 특성(Risk Return Profile)’이 서로 다른 채권‧주식‧대체자산 등 각 자산 군에 대한 자금 배분 비중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채권은 상대적으로 저위험 저수익 자산이고, 주식은 고위험 고수익인데 비해, 대체자산은 중·저위험 중·고수익의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국민연금 수익률을 제고하려면 대체 16%, 주식 41%, 채권 42%의 기존 SAA에서 채권 비중을 대폭 낮추고 고위험의 주식과 중위험의 대체 비중을 높여야 한다.

이럴 경우 기대 수익률과 허용 위험 한도도 동시에 높아진다. SAA 변경을 놓고 2000만 연금 가입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가입자들의 투자 성향은 위험 추구형부터 위험 회피형까지 천차만별이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 합의를 이뤄낼 것인가가 과제로 남는다.

셋째, ‘수익률 상향(To-be)’에 대한 인식 공유와 함께 ‘현재의 문제점(As-is)’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진단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예상된다. 국민연금 기금 자체의 지배구조, 전주에 위치한 기금운용본부의 지리적 한계, 낮은 보상 수준, 성과 평가의 단기성 및 그 평가 방식, 운용 전문성 및 글로벌 역량의 제약, 기금운용본부장의 짧은 임기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될 수 있다.

일례로 하나만 생각해 보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이전 문제만 해도 뜨거운 감자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투자 시대, 기금운용본부는 서울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를 두고 ‘비정상의 정상화’라고도 한다. 네덜란드 최대 연기금운용사인 APG는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300m 이내에 있는데, 국민연금은 인천공항에서 300㎞를 가도 없다는 비아냥도 있다. 반면 지역 균형 발전론자들과 현재 기금본부가 위치한 전주 지역에서는 크게 반발한다. 플랫폼 비대면 시대에 지리적 제약은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주장이 맞선다.

넷째,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실사구시적 처방이 나와야 하고 상응하는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 특히 글로벌 수준의 연기금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수준의 보상도 뒤따라야 한다. 현재 ‘캐나다 연금 투자(Canadian Pension Plan Investment, ‘CPPI')’는 글로벌 모범 사례로 꼽힌다. CPPI의 과거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10.8%, 최근 5년은 8.1%였다. 상대적으로 높은 CPPI의 수익률은 고위험 고수익 SAA에 주로 기인하지만, 그 운영 인력 수준을 간과할 수 없다.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최고의 보상으로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다.

우선 그 보상 수준을 국민연금과 비교해 보자. 지난해 국민연금 상임 임원들의 평균 연봉은 1억5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같은 해 CPPI 상임 임원 6인의 평균 보상액은 성과급을 포함해 67억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의 무려 44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위원들은 거마비 수준의 보상에 그치지만, CPPI의 이사회 구성원 12인은 비상근일지라도 평균 1억6000만원의 사례비를 받는다. 확실한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다.

CPPI는 이사회의 전문성에서도 탁월하다. 보드 멤버 12인은 다양한 조직의 C-레벨, 자산운용, 위험관리, 재무회계, 글로벌 비즈니스, 테크놀로지와 데이터, ESG 등의 분야에서 평균 30년 이상의 오랜 전문성과 경력을 갖고 있다. 또한 글로벌 기금에 맞게 영국‧미국‧캐나다 등 다국적 전문가들이다. 반면 20인으로 구성된 국민연금 기금운용 위원들은 고용노동부, 농식품부 차관 등 5인의 당연직과 사용자, 근로자, 지역 가입자 추천의 대표성 위주로 구성돼 있다. 이들 대다수의 기금운용 전문성과 경험은 의문시된다.

다섯째, 실행 단계다.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고도 어렵다. 즉 경기 후퇴와 자산 시장 변동성 확대 시 고위험 고수익의 SAA 전략 하에서 단기 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예컨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CPPI는 한 해에만 18.6%의 손실을 기록했다. 오를 때는 조용하다 빠지면 온 국민이 시끄럽다. 하지만 당시 CPPI의 대표는 그 손실에 대해 장기투자 과정의 일환이며, 한 해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면 미래 큰 수익을 놓친다고 강조하며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했다.

그들이 이미 정립한 ‘투자 신념(Investment Belief)’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즉 고위험 감수는 장기 투자 수익률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장기 투자는 미래에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며, 무엇보다 CPPI는 ESG 투자, 액티브 운용, 인게이지먼트 강화 등 책임 투자의 필수 전략과 방법론들을 치밀하게 구사하며 대비한다고도 덧붙였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그들은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전범(典範)을 보여줬다. 한국 맥락에서도 이런 설득이 가능하긴 할까?

이제 글을 맺겠다. 앞서 일반적 문제 해결 단계들을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에 적용해 보았다. 다섯 단계 중 어느 것 하나도 녹록지 않다. 난제 중 난제다. 이 첨예하고 지난한 이슈를 풀려다 자칫 정권은 인기도 잃고 각종 선거에서 패할 수도 있다. 과거 정권들이 땜질이나 폭탄 돌리기에 그친 이유다. 구두선으로 위기를 넘기곤 골든타임마저 놓쳐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정권은 결기 있게 연금 개혁을 내걸었다. 그러니 지켜보겠다. 거대 연금 국민연금 코끼리가 어떻게 냉장고로 들어가는지를. 또다시 허무 개그는 안 된다.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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