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악화시키는 주범 '반추'… 어떻게 다뤄야 할까?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 2023. 3.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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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반추는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흔한 심리 현상이다. 과거에 있었던 일이 지금 현재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떠올라 후회와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생각이 반추다. 소가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생각을 계속 곱씹는 것을 말한다.

반추에는 끝맺음이 없다.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똑같은 생각이 반복된다.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 왜 이런 일이 내게 계속 생기는 것일까? 이런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을 것 같아’처럼 자신이 우울해진 이유를 찾아 맴돌고, 우울증 때문에 무력해진 자기 처지를 비관한다.

반추를 하다 보면 우울의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이것은 갈증이 난 여행자가 사막에서 신기루를 좇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각을 좇아가다 보면 오아시스가 아니라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지고 만다. 반추는 긍정적 생각까지 몰아낸다. 우울증 환자가 비활동성에 빠지는 주범도 바로 반추다. 반추에 걸려 들면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리고 현실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는 동기가 가라진다. 생각하느라 행동할 기운마저 뺏기기 때문이다. 

집에 계시던 할머니가 카펫에 걸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이런 사고가 생기면 우선 ‘구급차를 부를까’ 혹은 ‘내가 빨리 차로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갈까?’ ‘다른 곳은 다친 곳은 없으신가?’라는 생각을 하고 얼른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 하지만 반추에 빠진 사람은 ‘왜 카펫에 걸리신 걸까? 누가 이 카페트를 깔아 놓아서 할머니를 다치게 한 걸까? 평소에 내가 할머니를 잘 못 돌봐드려서 이런 사고가 생긴 거야’라는 생각에 잠겨 버린다. 다친 할머니를 실제로 도와주려는 행동은 하지 못 한 채 원인 찾기에 골몰하고 나중에는 엉뚱하게 자기를 비난하며 우울해한다.

반추를 하다 보면 문득 대단한 통찰이 찾아온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나의 결혼 생활이 지옥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어’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거나 ‘내가 우울한 건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 했기 때문이야’라고 우울한 마음의 원인을 발견하고 ‘나는 앞으로도 영영 우울에서 못 벗어날 것 같아’라고 판단하며 마치 자기 미래가 보이는 것처럼 여긴다. 골똘히 자기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수행자처럼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생의 잘못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 과거 탓만 하며 무력감만 더 키우게 된다. 달라지려는 용기는 사라지고 노력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 절망한다. 반추는 그저 생각에 불과한데도 마치 그 생각이 진실인 양 받아들이고, 자기와 세상을 부정적으로 왜곡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은 반추로구나’하며 알아차리기만 해도 생각을 멈출 수 있다. ‘회전 관람차가 돌 듯이 계속 돌아가듯 생각이 뱅글뱅글 도는 거네’라며 자기 생각을 마치 남의 생각인 양 관찰해보자.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이건 반추야’라고 이름 붙여주면 된다. ‘생각이 스파게티처럼 꼬이는 걸 반추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자신의 생각이 반추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생각이 2분 이상 반복된다고 느껴지면 스스로에게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라. (1) ‘생각을 반복했더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좋은 방법이 떠올랐는가?’  (2) ‘생각을 계속 했더니 기분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는가?’ 둘 중 하나라도 ‘그렇다’라고 대답하지 못하면 반추에 빠진 것이다.

‘반추구나, 그렇다면 나는 ○○○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반추에 이전과 다르게 대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지금 당장 몸을 움직여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하고 생각의 초점을 바꿔야 한다. 생각은 몸을 써야 조절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산책이다. 무릎이 튼튼하다면 뛰어도 좋다. 숲길을 걸으면 더 좋다. 녹색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면 밤에는 어떻게 하냐?’고 묻기도 하는데 이럴 때도 역시 몸을 써야 한다. 빨래를 개고, 서랍을 정리하고, 뜨개질을 하거나 미뤄뒀던 다림질을 하면 좋다. 단순한 동작이 반추를 줄인다.

경험에 주의 깊게 참여하는 것도 반추를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면 된다.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입으로 내쉴 때 몸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보자. 협주곡을 나지막이 틀어놓고 하나의 악기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여 들어봐도 좋다. 침대에 누워 벽지에 그려진 무늬를 물끄러미 바라봐도 된다. 그러다 반추가 끼어들면 ‘또 반추가 떠오르는구나’라고 알아차리고 다시 지금 그 순간의 느낌에 집중하면 된다. 오감을 활성화하고 그것을 세밀하게 느끼다보면 반추는 저절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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