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건너간 올레길 ‘규슈올레'… 3년 만에 새 코스 개장
3월 5일 오전 10시쯤 일본 규슈 사가현 다케오시 다케오온천역 광장. 가벼운 복장을 한 한일 올레꾼 8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다케오온천역 광장에선 규슈올레 개장 10주년을 기념하는 제1회 규슈올레 걷기 축제가 열렸다. 원래는 지난해가 규슈올레 개장 10주년이었지만, 코로나 사태로 행사가 열리지 못했었다. 규슈올레 선정지역 협의회 고마츠 타다시 회장은 개막 인사에서 “제주올레 자매의 길인 규슈올레를 유치하고 관광 산업과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축제 전날인 4일에는 규슈 나가사키현 마츠우라시에서 규슈올레 18번째 코스 개막 행사가 열렸다. 코로나 사태로 2년간 중단됐던 신규 코스 개장 행사가 재개한 것이다. week&은 2012년 제1호 규슈올레인 다케오 코스부터 신규 코스 개장 행사를 취재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직후 개장한 두 개 코스만 제외하고 모든 개막 행사에 참석했다. 지난 11년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어도 올레길에서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일본에 진출한 올레길, 규슈올레의 11년을 돌아본다.
올레길, 수출하다
규슈관광추진기구(현재는 규슈관광기구)가 한국인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찾아낸 대책이 올레길 수입이었다. 그 시절 한국은 걷기여행 열풍으로 뜨거웠다. 2007년 제주올레 1코스가 개장한 뒤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트레일(걷기여행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규슈 곳곳에 제주올레를 닮은 트레일을 만들면, 발길 끊었던 한국인이 돌아와 걸을 것이라고 규슈관광기구는 기대했다. 그 기대는 맞아떨어졌다.
2012년 2월 29일 규슈올레 제1호 코스인 다케오 코스가 개장했다. 다케오 코스 개장식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1965년 현대건설이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해 한국 최초로 해외 건설사업에 진출했는데, 반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 ‘안티 공구리(콘크리트) 정신’을 추구하는 제주올레가 일본에 수출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규슈올레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일본 입장에서 규슈올레는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마케팅 수단이지만, 우리에게 규슈올레는 일본에 수출한 K콘텐트다. 제주올레는 올레길이라는 이름부터 간세다리(제주올레 이정표)·화살표·리본 등 올레 상징을 사용하는 명목으로 규슈관광기구로부터 연 100만엔(약 1000만원)을 받는다. 코로나 사태로 신규 코스 개장이 중단됐던 2021년과 2022년에도 100만엔씩 받았다. 1960년대에는 한국 기업이 태국에 고속도로를 만들어줬지만, 50년쯤 뒤에는 한국 시민단체가 일본에 트레일을 열었다.
규슈관광기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규슈올레 방문자 수는 53만5000명이다.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만든 올레길이었지만, 일본인 방문자가 훨씬 더 많았다. 규슈올레의 성공에 힘입어 일본에 제2의 올레길도 열렸다. 2018년부터 꾸준히 개장하고 있는 미야기올레다. 미야기올레는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에 난 올레길로, 현재 4개 코스가 운영 중이다. 이유미 제주올레 일본지사장은 “제주올레의 가치와 철학이 일본에서 11년 지속할 수 있도록 함께 걸어주신 한국과 일본 올레꾼에게 감사하다”며 “오는 11월엔 미야기올레도 새 코스를 개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매의 길
현재 한국의 여러 여행사가 규슈올레 상품을 판다. 한 달에 서너 개 코스씩, 전체 18개 코스를 다 걷는 종주 상품도 있다.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아도 규슈올레를 걷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제주올레와 똑같이 생긴 표식만 따라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정표만 보면 규슈올레가 제주올레보다 훨씬 더 친절하다.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는 “일본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자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며 “코로나 사태 때 중단됐던 규슈올레가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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