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만들기] 한국이 던진 ‘강제징용’ 해법 “일본, 적극 호응해야”
위기의 한·일관계 연속 진단 〈29〉
하지만 정부 방안에 따라 제3자 변제를 위한 모금은 가시화하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지난 14일 오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금 입금을 완료한 데 이어 포스코 역시 최근 이사회 의결을 거쳐 15일 지원재단에 40억원의 기부금을 납입했다.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도 강제징용 해법은 한·일관계 회복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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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관계 복원의 최대 분수령
한·미·일 관계 강화에도 필수적
북핵·미사일 위협도 결단 배경
정부, 진솔하게 국민 설득해야
」
다만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문구로 사죄 표명을 대신하고, 일본 피고 기업(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이 제3자 변제를 위한 재원 마련에 참여하지 않는 점은 이번 해법의 한계로 지목된다. 지난 14일 오전 한일비전포럼에 참석한 한·일 전문가 11명이 “일본의 추가 호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 이유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 발제 요약
정부는 일본을 계속 적대의 대상으로 삼을지, 협력 파트너로 나아갈지의 기로에서 이번 해법을 발표했다. 강제징용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하고 신뢰가 구축된 한·일 관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부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차원에서 제3자 변제라는 해법을 도출했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미·중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질서가 급변하며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이 중요해진 상황도 이번 결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제3자 변제안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문제를 수습하는 차선책이다. 우리의 해법 발표 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이 발표한 내용은 과거 일본의 완고한 입장에선 한 발 물러선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소한 일본이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더 직접적으로 표명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지난 6일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할 때도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제징용 문제의 큰 매듭은 우리 정부 주도로 풀되 앞으로 일본의 추가적인 호응을 얻겠다는 취지인 만큼 아직 해법의 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부는 신뢰 구축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제 공은 일본 쪽으로 넘어갔다.
정부 해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 의견이 안타까운 것은 대안 제시가 없다는 점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승소한 강제징용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대안이 묘연하다. 정부가 이번 해법을 통해 피해자에게 우선적으로 실질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선택지를 줬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변호사=일본은 협력의 대상이고 국익의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는 주장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강제징용 문제의 경우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이 무시되면 최고 법원의 결정조차도 협상을 통해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남는다. 더구나 제3자 변제라는 방식과 이를 위한 기금 조성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포스코나 KT&G 등 한·일 청구권 협정의 수혜 기업 돈을 받아 피해자 15명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금으로 사용하는 건 배임이 될 수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강제징용 문제는 국가 폭력 피해자에 대한 구제의 문제다. 이번 정부 조치에 대한 평가도 얼마나 실효성 있는 피해자 구제가 가능한지, 법적 정합성은 갖췄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이라고 평가한다. 인권의 측면에서 한국이 피해자 구제를 위해 주도적으로 결단했다는 점이 국제무대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은 국가폭력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구시대적인 기준을 고집하며 사실관계조차 부정하는 태도인데, 이건 국제 규범이라는 차원에선 퇴행적 행태다.
일본, 구시대적인 퇴행적 행태 벗어나야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강제징용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법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 같다. 우선 2018년 대법원 판결이 갖는 의미나 가치에 방점을 두는 분들은 정부의 해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다. 반면 판결로 인해 발생한 문제, 즉 현안이란 측면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분들은 이번 해법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박홍규 고려대 교수=정부는 이번 해법을 ‘대승적 결단’이라고 표현했는데, 과연 좋은 결단이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해법 발표 후 반발이 거세고, 그 반발은 국내에서 역사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가 있다. 2019년 발의된 ‘문희상안(한·일 기업과 한·일 정부의 기부금에 더해 국민의 자발적 성금을 모아 새로 설립하는 재단을 통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결단을 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해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한·미·일 협력을 구축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결단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한다. 다만 불을 끄기 위해서 너무 서두르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의 4월 통일지방선거 이후로 해법 발표를 미루고 치열하게 일본과 협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희상안처럼 여야가 힘을 모아 입법을 통해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정부가 해법을 발표하는 행정적 조치에 그치게 된 것이 아쉽다. 이제부터는 대통령이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이 난제(難題)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성찰하도록 하는 ‘설득의 언어’를 꺼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본이 호응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반대 진영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국내 정치적 프로세스에 노력을 더 기울였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는 정치적 문제인데, 정부는 이를 비정치적으로 다뤘다. 그래서 이렇게 반대가 커졌고 여야 대립도 첨예해졌다. 정부가 왜 제3자 변제를 해법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대법원 판결과 국제 조약 사이에 끼어 있는 상황을 보다 진솔하고 적극적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해법을 바꿀 순 없고, 앞으로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사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우리 정부의 원죄가 있다. 정부가 경제 발전을 위해 개인의 청구권을 일괄 타결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지었고, 경제발전을 이룬 후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후속 조치가 부족했다. 외교적 노력을 통해 일본의 추가적인 호응을 끌어내는 동시에 지금이라도 정부가 조금 더 진솔하게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사과나 성명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분열된 여론을 진정시키길 바란다.
한국, 차선책이지만 해법 실천해나가야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사실 지난 1월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쉽고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다. 2018년 대법원 판결대로 가겠다고 했으면 반대 진영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었다. 이 경우 일본과의 관계 개선 역시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고 발표하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모든 짐을 짊어지며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남은 과제는 발표한 해법을 초지일관 관철하는 일이다.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정부의 해법 발표 이후 일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역대 내각의 입장과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정도의 호응에 그쳤다. 우리와 달리 일본은 문제 해결에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선 기시다 총리가 역사와 관련된 발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본다. 그 내용은 우리 국민 모두가 듣고 싶어하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표현을 담아야 한다. 인색한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다.
▶홍석현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을 추진한다는 점을 느꼈다. 다만 정부 부처와 대통령실은 물론 자문 그룹에서도 해법의 내용과 발표시기에 대해 여러 다른 의견이 나왔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 치열한 협상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외교부 차관·국장급에서 논의할 게 아니라 대통령실과 일본 총리 관저가 내밀하고 치열하게 의견을 나눴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다소 부족했다. 향후 일본이 추가적인 호응에 나설 수 있도록 협의를 이어나가되 국내적으론 반대 세력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피해자를 설득하는 노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 야당 역시 계묘늑약이니 삼전도 굴욕이니 하는 과장된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
◆한반도평화만들기=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해 2017년 11월 출범했다. 산하의 한일비전포럼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략적 해법을 찾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위원장을 맡았다.
정리=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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