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미국과 중국 사이, 호주의 ‘뚝심 외교’
미국·영국·호주 정상들 등 뒤로 펼쳐진 캘리포니아 바다에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이 떠 있다. 3국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가 호주에 공급하게 될 미주리함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얼굴이 밝았다. 엊그제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오커스 정상회의 결과 미국은 1950년대 영국 이후 처음으로 호주에 첨단 핵기술을 공유해주게 됐다. 미국의 통 큰 결심은 두말할 나위 없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앨버니지 총리도 “호주 정부는 국방에 투자할 결의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이렇게 보면 호주가 중국과 ‘한판 대전’을 벼르는 것 같지만 오히려 중국은 호주에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호주 무역의 3분의 1이 중국과 이뤄졌다. 화웨이·코로나19 등으로 틀어져 2019년 이래 중국으로부터 소위 ‘경제 보복’을 당했어도 이렇다. 오히려 호주산 석탄을 수입 금지했던 중국이 극심한 전력난을 겪었다. 중국은 지난해 앨버니지 노동당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화해 손짓을 먼저 했고, 최근 호주산 석탄과 면화의 수입을 허용하는 등 통상 마찰을 ‘없던 일’로 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호주는 무슨 배짱으로 중국에 맞짱 뜰 수 있던 겁니까.” 최근 한국여성기자협회 주관으로 ‘인도태평양 안보전략 현장’ 취재차 호주를 방문한 동안 입에 달고 다닌 질문이다. 누굴 만나도 대화는 돌고 돌아 ‘중국’에 이르렀다. 특히 스콧 모리슨 전임 정부의 강대강 외교를 ‘확성기 외교’(megaphone diplomacy)라고 비토하던 노동당이 집권 후엔 전임 정부의 주요 대중국 정책을 계승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노동당은 오커스 협정 체결 당시만 해도 절차상 문제 등을 들어 질타했지만 이젠 잠수함 건조가 안보 동맹을 두껍게 하고 일자리 수만 개를 창출한다며 현 정부 치적으로 홍보하기 바쁘다.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중국에 대한 호주의 입장은 원칙적으로 일관됐다.” 지난 6일 만난 팀 와츠 호주 외교부 부장관의 말이다. 원칙이란 한마디로 ‘국익’이란다. “중국 관련 문제에서 역대 호주 정부는 초당적으로 정책을 지지·유지해왔다”면서 “중국과 협력이 가능한 부분은 함께 하되 근본적 이익이 걸린 문제엔 우리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넓은 국토가 품은 광대한 천연자원, 미·영과 끈끈한 가치 동맹 등 ‘뒷배’가 없고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단기적·정치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원칙이 새삼스러웠다.
강혜란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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