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 알지만 가장 잘 모르는, 엄마를 기록하다

김은미 2023. 3. 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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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를 읽고

[김은미 기자]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책 표지
ⓒ 휴머니스트
2020년 출판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논픽션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신뢰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재영 작가의 신작이다. 어머니의 서사를 듣고 기록하고 작가의 페미니즘적 견해를 덧붙인, 어머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 책의 제목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I never had a mother)"는 에밀리 디킨슨이 편지에 썼던 유명한 문장이다. 이 선언은 모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여성적 힘'을 선포하고,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면서 자신을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작가의 신념으로 읽힌다.

어머니로부터 뻗어나온 삶,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어머니의 삶을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잘 아는 것 같지만 전혀 모르는 존재가 '엄마'일 수 있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엄마의 방'이지만 그 어느 곳도 오롯이 '엄마의 독립된 공간'이 될 수 없었던 삶, 그 지점이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뻗어 나왔고,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모든 딸과 어머니, 모든 자식과 어머니의 삶에 맞닿아 있다. 지나온 삶을 읊조리듯 내뱉는 어머니의 담담한 내레이션과 그 삶을 이해하려는 딸의 해석이 교차하면서 뜨거운 교감은 시작된다.

평생 시집살이를 하면서 시어머니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던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서 그 어떤 선택권도, 결정권도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고 정신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64쪽).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개인적 포부나 의식의 변화는 숨겨야 했고, 집 안팎에서 노동해야 했으며, 노동의 목적은 당연하게 '스위트홈'으로 귀결되어야만 했다.

가부장제 체제에 갇혀 '어머님의 식사'가 인생 최대의 화두이고 책임이었던 어머니. 종속적 관계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고부관계. 페미니즘적 언어로 고부관계를 언급하고 재구성하는 일이 어렵고 불편하다고, 반드시 필요하지만 가능하면 회피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작가의 복잡한 심정이 행간에 잘 드러난다.

사랑하는 두 사람 중 어느 한쪽도 납작하게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 않은 걱정과 두려움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사이에서 서성이는 작가의 심정을 '페미니즘'이라는 틀에 가두어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언제나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있는 모성 신화의 기본값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어머니가 있다. 물론 어머니답지 않은 어머니도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딸에게 끝없는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어머니가 있고, 아들만 귀하게 여기는 어머니가 있고, 어린아이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어머니가 있고,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어머니가 있다(127쪽).

미워하고 또 사랑하고

극단적인 사례가 아닌 이상,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미워하고 사랑하고'의 무한 반복이다. 가장 가깝지만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르고 살아가는 관계이기에 이 기록이 더욱 가치 있다. 내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결을 하나씩 들춰내 보고, 거창한 형식이 아니더라도 고요하게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내가 슬픈 건 엄마와의 추억이 떠오를 때가 아니야, 추억할 게 없다는 걸 깨달을 때야.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몰라, 엄마에 대해 기억나는 것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없어"(235쪽)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어?"라고 묻자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나에게 일종의 경구(aphorism)다.
열렬히 읽는 삶이 그녀를 그녀이게 했다면,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사는 한
타인이 나를 훼손해도 나는 훼손당하지 않고, 타인이 나를 모욕해도
나는 모욕당하지 않으며,
타인이 나를 소멸시키려 해도 나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212쪽)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어머니의 '책 읽기', 타인으로부터 훼손당하고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선택한 딸의 '읽고 쓰기'는 관계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어머니가 병으로 고통받을 때 딸이 낭독해 준 문장들(한정원 시인의 산문집 <시와 산책> 중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딸이 아팠을 때 어머니가 읽어준 책 속 문장들(레베카 솔닛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을 통과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 이 책의 압권이다.

"나는 네 덕분에 또 조금 성장한 것 같다"(263쪽)라는 어머니의 고백이, 작가로 하여금 어머니의 서사를 기록하는 필경사가 되어 보기로 결심하게 만든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말하고 듣고 마주해보자.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어머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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