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 녹슨 탄피, ㄴ자로 꺾인 몸... 일주일만에 드러난 백골들
심규상 2023. 3. 15. 15:06
[아산 유해발굴 현장] 성재산 방공호에서 25구 드러나… "마을 사람 모두 끌고가 죽여"
"이것 좀 보세요. 삐삐선(군용 전화선)이 참 많이 나와요. 간혹 철삿줄도 있고요."
"저기 보세요. 손목에 삐삐선이 감겨 있죠?"
백골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 심하게 일그러졌을 당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머리 위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얹혀있다. 총알은 그의 머리 또는 몸통에 박혔을 것이다. 손목뼈에는 삐삐선이 감겨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는 지난 7일부터 이곳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한국전쟁기이던 지난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 사이에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민간인들이 집단 살해됐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채록한 관련 유가족의 증언을 보면 당시 온양경찰서 또는 배방지서 옆 창고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이 성재산 방공호에서 총살됐다. 이후 주민들은 성재산에 접근하기를 꺼렸고, 유족들은 시체를 분간하기 힘들어 수습하기 어려웠다. 경찰이나 치안대 등에 개인적인 감정을 사거나 잘못 보여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부역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끌고 가 죽였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가해 주체로 온양경찰서장, 온양경찰서,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를 지목했다. 온양경찰서장은 살해를 지시했고, 치안대는 주민들을 연행했다는 것이다. 경찰 혹은 경찰의 지시를 받은 치안대는 처형을 맡았다. 1기 진화위는 최종 책임은 이승만 정부에게 귀속된다고 밝혔다.
전국 곳곳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희생자 유가족들의 표정도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들은 처참하게 드러난 유해 앞에 엎드려 술잔을 올렸다. 일부 유가족과 아산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절을 하며 흐느꼈다.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 고개를 푹 떨구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 심하게 일그러졌을 당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
ⓒ 심규상 |
"이것 좀 보세요. 삐삐선(군용 전화선)이 참 많이 나와요. 간혹 철삿줄도 있고요."
"저기 보세요. 손목에 삐삐선이 감겨 있죠?"
지난 14일 충남 성재산 공수리 방공호(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일대에서 희생된 유해 발굴을 현장 지휘하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한 곳을 가리켰다.
산기슭 구덩이 맨 위쪽에 백골 상태로 앉은 자세로 숨진 유해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순간 저절로 눈이 감겼다. 백골이지만 얼굴 형상만으로 희생자가 살해 전 어떤 상태였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 경찰이나 치안대 등에 개인적인 감정을 사거나 잘못 보여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부역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끌고 가 죽였다. |
ⓒ 심규상 |
▲ 머리 위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얹혀 있다. 총알은 그의 머리 또는 몸통에 박혔을 것이다. |
ⓒ 심규상 |
백골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 심하게 일그러졌을 당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머리 위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얹혀있다. 총알은 그의 머리 또는 몸통에 박혔을 것이다. 손목뼈에는 삐삐선이 감겨있다.
유해는 'ㄴ'자 형태로 심하게 꺾여 있었다. 구덩이(방공호) 안에 몰아넣은 후 살해했거나, 살해 후 구덩이 안으로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것으로 짐작됐다. 나머지 유해들도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대부분은 엎드려 있는 자세로 얼굴이 드러난 유해는 많지 않았다.
유품으로는 고무신과 구두 밑창, 사기그릇 파편 등이 출토됐다. 일자형 담배 파이프도 드러났다. 이는 희생자들이 인근 지역에서 끌려온 민간인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 손목뼈에는 삐삐선(군용 전화선)이 감겨있다. |
ⓒ 심규상 |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는 지난 7일부터 이곳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한국전쟁기이던 지난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 사이에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민간인들이 집단 살해됐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맹용호(78,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씨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두 명 등 가족 5명을 잃었다. 서울에 살다 전쟁을 피해 인근 수대리에 있는 할아버지 집으로 피난을 왔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 5살 때다.
"서울에 살다 아버지가 의용군(민간인의 자발적 참여로 조직되는 군대)으로 가시는 바람에 아산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으로 피난 왔어요. 제 나이 5살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마을 어른들을 모이라고 하더니 모두 끌고 갔어요. 저도 동생과 할아버지 할머니 손을 잡고 따라가는데, 나이 많은 마을 할머니가 저와 제 동생을 떼내는 바람에 살아남았습니다. 피난 온 사람인지 아닌지 가리지 않고 모두 끌고 가 죽인 거죠."
▲ 나머지 유해들도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대부분은 엎드려 있는 자세로 얼굴이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
ⓒ 심규상 |
▲ 지난 14일 발굴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드러난 유해는 모두 25구에 이르렀다. 구덩이 크기는 폭 3m, 길이 14m 정도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 구덩이는 군인들이 적의 침입에 대비해 은폐 또는 엄폐를 위한 용도(방공호)로 만들었다. |
ⓒ 심규상 |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채록한 관련 유가족의 증언을 보면 당시 온양경찰서 또는 배방지서 옆 창고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이 성재산 방공호에서 총살됐다. 이후 주민들은 성재산에 접근하기를 꺼렸고, 유족들은 시체를 분간하기 힘들어 수습하기 어려웠다. 경찰이나 치안대 등에 개인적인 감정을 사거나 잘못 보여 끌려간 경우도 있었다. 부역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도 끌고 가 죽였다.
발굴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 14일 드러난 유해는 모두 25구다. 구덩이 크기는 폭 3m, 길이 14m 정도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 구덩이는 군인들이 적의 침입에 대비해 은폐 또는 엄폐를 위해 만들었다. 이 위치에서 앞을 내려다보니 멀리 방화산 앞(아산시 백암리)까지 시야가 뻥 뚫려있다. 하지만 인민군이 퇴각하자 경찰과 치안대는 이곳을 민간인학살 터와 암매장지로 사용했다.
▲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가해주체로 온양경찰서장, 온양경찰서,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를 지목했다. |
ⓒ 심규상 |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가해 주체로 온양경찰서장, 온양경찰서,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를 지목했다. 온양경찰서장은 살해를 지시했고, 치안대는 주민들을 연행했다는 것이다. 경찰 혹은 경찰의 지시를 받은 치안대는 처형을 맡았다. 1기 진화위는 최종 책임은 이승만 정부에게 귀속된다고 밝혔다.
실제 유해 발굴 결과 가해자들의 살해 도구로 사용한 A1 탄피와 카빈 탄피, 99식 소총 탄피(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 북한군 소총 탄피(북한군에게 노획한 소총으로 보임) 등이 다량 발굴됐다.
▲ 14일 오후 1시 30분, 전국에서 찾아온 유가족들이 처참하게 드러난 희생자 유해 앞에서 추모의식을 하고 있다. |
ⓒ 심규상 |
▲ 온양경찰서장은 살해를 지시했고, 치안대는 주민들을 연행했다. 경찰 혹은 경찰의 지시를 받은 치안대는 처형을 맡았다. 1기 진화위는 최종 책임은 이승만 정부에게 귀속된다고 밝혔다. |
ⓒ 심규상 |
전국 곳곳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희생자 유가족들의 표정도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들은 처참하게 드러난 유해 앞에 엎드려 술잔을 올렸다. 일부 유가족과 아산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절을 하며 흐느꼈다.
이번 유해 발굴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한 첫 유해 발굴로 재단법인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주관해 내달 15일까지 진행된다. 발굴단은 공수리(성재산 방공호) 유해 발굴이 마무리되는 대로 백암리(새지기) 일대( 약 10m, 폭 3m)에 대한 유해발굴을 벌일 예정이다.
▲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당시 항공사진을 통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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