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같은 작품" 귀한 중년여성서사에 쎈 여배우들이 뭉쳤다
평균 나이 54세, 연기경력 도합 425년 중년 여배우들의 도전
저무는 삶 아닌 다시 시작하는 삶 택하는 여성 7인 그린 작품
"여성 배역 기근에 단비같은 작품, 중년 여성 서사 더 많아져야"
스스로 꿈을 잊은 채 딸, 부인, 그리고 엄마로 살아온 중년 여성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다시, 봄’이 돌아온다. 이번 재연에는 배우 문희경, 김현진, 구혜령이 합류해 생동감 있는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세 배우는 역시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담은 뮤지컬 ‘메노포즈’로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사이라 이번 작품이 남다르다고 말한다.
같은 중년 여성을 소재로 했지만 ‘메노포즈’와 ‘다시, 봄’은 차이가 명확한 작품이다. 10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희경 배우는 “메노포즈는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으로 구성된 작품이라면, 다시, 봄은 우리 한국 중년 여성의 인생과 삶을 디바이징 씨어터(Devising Theatre·공연 참여자가 극 구성에 적극 개입하는 공동 창작 방식)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메노포즈의 주인공이 4명이었다면, 다시 봄은 7명의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창작 뮤지컬로 발전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라 도전하게 됐다는 그는 다시, 봄 또한 메노포즈처럼 해마다 공연되면서 완성도를 더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곱명의 배우가 모여 그려내는 따뜻한 인생 2막, 하나도 빠지면 안되는 우리는 '레인보우'
김현진 배우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을 매력 포인트로 꼽았다. 그는 “매번 연습 때마다 노래하면서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가사와 선율에 위로를 받는다”고 고백했다. 다시, 봄의 음악은 영화 ‘은교’, ‘유열의 음악앨범’, ‘침묵’을 작업한 음악감독 연리목이 맡았다. 김 배우는 “서정적이면서도 깊이 스며드는 음악적 분위기가 여성으로 다시 필 수 있다는 위로와 응원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중년여성 일곱명이 극을 이끄는 만큼 ‘다시, 봄’의 무대는 시종 분주하다. 구혜령 배우는 “일곱명의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극 내용에서의 유대감이 실제 연습에도 이어져 배우들이 서로 격려하고 보듬어가면서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 혼자 잘하는 것보다 일곱명이 다 잘해야 하므로 서로 의지하며 연습하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말에 김 배우는 “오늘 연습하면서 우리가 일곱명이니까 레인보우 합창단이라고 부르자고 애드립 대사를 해봤는데 반응이 좋았다”며 “하나만 없어도 무지개가 될 수 없고 각각의 색깔과 역할이 모여야 완성되는 만큼 우리가 진짜 ‘레인보우 합창단’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인다.
연습팀의 구심점은 왕고참 ‘희경 언니’다. 매일 연습실에 가장 먼저 나와 후배들을 맞는다. 문 배우는 “오랜만의 뮤지컬 무대인데 연습실에서 후배들을 보면 과거 내 모습같아서 배려하고 다독이면서 솔선수범하려는 것도 있다”며 “사실 노래는 재능보다는 연습이 더 중요한지라 치열하게 해야하는 것도 있다”며 웃어보였다.
실제 두 자녀의 엄마인 김현진 배우는 극중에서 미혼 여성을, 솔로인 구혜령 배우는 전업주부를 연기해 각자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야기도 유쾌하다. 김 배우는 “제가 맡은 연미는 인생 2막의 목표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외로운 캐릭인데 자유시간을 힘들어 하는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됐다”며 “나는 아이 둘 키울 때 자유 시간이 간절했는데, 반대로 홀로 있는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는 연미의 캐릭터를 이해하려 구혜령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에 구 배우는 “저 역시도 집에 가자마자 일하는 경아 캐릭터가 이해가 안돼서 현진 언니에게 물어보니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와서 누우면 안되고 바로 일부터 해야된다며 생활 연기 가이드를 해주셨다"며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그런 경아의 마음을 당연히 여기는 가족들로부터 느끼는 서운함을 차츰 이해하며 배역에 몰입하게 됐다”고 했다.
문희경 배우는 30년간 최고의 아나운서 자리를 지킨 진숙 역을 맡았다. 그는 “일과 가정 모두 성공하고 부족함 없는 커리어우먼처럼 보이지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차츰 자리를 내주고 흘러가는 세월을 어쩔 수 없어하는 진숙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며 “늘 노력하고 다른 연기톤을 보여줘야하고, 또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도 담아서 진숙을 통해 삶의 아픔과 극복의지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고백했다.
여성 배역 기근에 단비같은 창작뮤지컬, 중년 여성 서사 작품 더 많아져야
여성의 삶을 다룬 작품이 ‘너무 귀하다’는 세 배우는 중년 여배우의 배역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 배우는 “우리 나리에 작품 만나기가 힘들다. 드라마는 많지만 영화, 연극, 뮤지컬은 우리 또래 배역이 한계가 있다”며 “다시 봄이 소중한 건 갱년기 4060여성의 배역을 우리 나이대의 배우가 맡아 보여줄 수 있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구 배우는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기초에 공연 작품을 이야기 하다보면 좋은 작품은 많지만 여성 배역이 부족해 실제 5:5의 성비로 구성된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다”며 “명작들조차 남성 비중이 70~80%를 차지해 실질적으로 여자 역할이 없는 현실 속에서 다시, 봄 같은 작품이 조금 더 많이 개발되고 또 발전됐으면, 그래서 여성 제작진이 여성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실제 '다시, 봄'은 등장인물을 비롯해 이기쁨(연출), 김솔지(극본·작사), 연리목(작곡), 김길려(음악감독) 등 창작진 대다수가 여성으로 제작 단계부터 주목받은 작품이다.
작품은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김 배우는 "집에서 대본을 보고 연습하고 있으면 딸이 먼저 다가와 대사와 노래를 살펴보며 따라부를만큼 공감해주더라"라며 "작품 제목인 '다시, 봄' 처럼 제2의 인생을 꽃피우고 폐경을 완경으로 넘어서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 한 분 한 분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지난해 초연 당시 이 작품을 관객석에서 본 구 배우는 공연이 끝나고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나도 중년 여성이지만, 내 친구들, 우리 또래가 느끼는 생각들을 작품을 통해 마주하게 됐었다"는 그는 "내 엄마의 이야기부터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갱년기, 가족과의 관계, 은퇴, 생계 걱정 등이 내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처음엔 재미있고 즐겁게 보다가 후반부엔 가슴 한곳을 찌르는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감동이 깊어서였을까. 지난해 10월 초연 후 5개월 만에 무대로 돌아온 '다시, 봄'엔 4050 관객의 뜨거운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공연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다시, 봄'의 연령별 예매 비율은 4050 관객이 58.5%, 2030 관객이 29.9%로 2배에 달한다.
평균 나이 54세, 연기경력 도합 425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던 베테랑 중견 여성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운 작품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만큼 맏언니의 각오도 남다르다. 방송활동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오르는 문 배우는 이 작품이 좀 더 오랫동안 관객과 함께하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 하길 바란다는 바람도 전했다. "창작 뮤지컬인 이 작품이 좋은 롤모델로 자리 잡아 다른 여배우들이 출연을 희망하는 선망작이 되길, 그래서 매년 더 발전한 모습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 공연은 15일부터 내달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진행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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