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끄는 진보당 현수막, 비결은 이것이죠"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장진숙 입력 2023. 3. 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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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광주 북구 손혜진, 동구 박현정 의원

[장진숙 기자]

'현수막 정치'의 시대다. 지난해 옥외광고법 개정으로 정당현수막 게시가 보장되며 거리에서 다양한 현수막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최근 진보당의 몇몇 현수막이 소셜미디어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입소문을 탄 것은 아니다. 광주에서는 작년부터 꾸준히 딱딱한 형식을 타파하고 재미있는 디자인과 문구, 사진들로 눈길을 끄는 이색적인 현수막을 게시하며 시민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중에서도 손수 지역에 현수막을 달며 주민과 소통해온 손혜진 광주 북구의원, 박현정 광주 동구의원과 그들의 고군분투기를 만나보았다.
 
▲ 박현정 광주 동구의원, 손혜진 광주 북구의원 좌측부터 박현정 광주 동구의원, 손혜진 광주 북구의원
ⓒ 신하섭
 
"처음에는 사실 의견이 분분했어요. 기존의 구호성 현수막이 아무래도 익숙했으니까요." 

박현정 의원은 작년 윤석열 손에 그려진 '왕' 자를 꼬집은 현수막을 내며 걱정이 많았다. 주민들 눈에 장난스럽고 가벼워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참신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새로운 모습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지금은 다른 당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드냐고 물어봐요. 만든 이를 영입하고 싶다고요. 지난 선거 때 젊은 여성 유권자들께서 '진보당 현수막이 너무 참신해서 관심이 간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난방비 인상을 규탄하며 걸었던 '재벌은 따뜻하게, 서민은 춥게, 거꾸로 타는 윤뚜라미 정책' 현수막은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언급되며 '진짜 민심을 반영한 참신한 구호'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진보당의 현수막은 신선한 디자인과 문구들로 큰 관심을 받았다
ⓒ 진보당
 
눈길 끄는 현수막의 비결

손혜진 의원은 눈길을 끄는 현수막의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현수막 문구는 우리 당원들이 직접 만듭니다. 몇 차례나 회의를 거쳐서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당원들이 직접 현수막을 거는 거죠. 저희 북구에서도 사다리를 여러 개 샀어요."

소수정당이 비용을 지불하고 사다리차를 쓰기는 어려운 일. 그러다 보니 모든 현수막을 일일이 당원들의 손으로 걸며 거리 곳곳, 목이 좋은 곳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차량에 혹여 가려지지 않을까,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현수막을 다는 것도 모두 퇴근을 마친 당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의원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저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이 현수막 하나를 거는 이들의 마음이 주민께 전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길을 지나시며 저 같은 의원과 당원들이 끙끙대며 현수막을 묶는 모습을 늘 보시다 보니 현수막의 효과가 더 커진 게 아닐까요."

직접 현수막을 다는 것은 '기동성'을 높이는 데도 한몫했다. 온라인에서 주목받았던 '죄 없어도 벌 안 받던데요?'라는 현수막이 국민의힘 현수막 밑에 시의적절하게 걸릴 수 있던 것도 직접 발로 뛰며 현수막을 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죄지어도 벌 안받던데요?' 소셜미디어를 통해 큰 관심을 얻었던 진보당의 현수막
ⓒ 진보당
 
하지만 '현수막 정치'에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야는 정쟁의 도구로 현수막 정치를 끌고 나왔고, 무분별한 게시는 안전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떼어진 현수막 쓰레기들도 문제가 되었다. 비판적인 보도들도 늘었다. 박현정 의원도 고민이 컸다.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아직도 고민이 많아요. 제가 의회에서 기후위기대응 특별위원장을 맡았기도 하고요. 현수막은 일회용 쓰레기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희 당이 언론에 많이 비치지 않으니 의정활동과 정당을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 명의로 된 현수막은 자제하고, 정당을 알리는 현수막만 게시하고 있어요."
  
손혜진 의원은 기울어진 언론의 상황을 비판했다. 

"소수정당으로서 언론에서 배제되었던 경험이 많아요. 지금은 현수막 정치가 주민들께 저희의 의정활동과 당의 정책을 알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요. 하지만 현수막이 마구잡이로 달리거나, 위험을 유발한다면 당연히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다리를 타고 조금이나마 높게, 안전하게 달아서 불편하시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보당의 모든 현수막은 당원들이 손수 게시한다
ⓒ 손혜진
지방정치는 '태도'의 문제

현수막 정치로 주민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이들의 의정활동은 어떨까.

박현정 동구의원은 세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되었다. 청년, 여성운동을 20년 넘게 해오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앞두고 치러진 지방선거에 나선 것이 정치의 시작이었다. 낙선 후에도 지역에서 교육공동체를 꾸리고 꾸준히 활동해왔고, 동네 오래된 '방앗간 집 셋째딸'의 진정성이 인정받아 당선의 기쁨을 누렸다.

"광주 동구는 진보정치의 토대가 탄탄한 곳이 아니에요, 하지만 오히려 꼭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절박함으로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의원이 되고 느낀 것은 '진보 의원 한 명의 무게'였다.

"주민들께서 행정에 불편한 것을 말씀하셔도 처리가 빠르게 되기가 쉽지 않죠. 안되는 경우도 많고, 예산을 수립해야 하는 문제면 벽에 말하는 수준입니다. 그동안은 일당 일색으로 의회가 이루어져 있다 보니 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잘 작동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제가 동구의 첫 진보당 의원으로 들어가 보니 구청과 의회에 긴장과 활력이 도는 게 느껴져요. 서로 잘하려고 하는, 행정과 의회가 동반성장 하는 느낌이 들죠. 비록 기초의원이지만 주민들을 대표해 쓸 수 있는 권한과 역할이 참 많습니다. 그만큼 의원의 책임과 소명이 무겁다고 생각해요."

박 의원에게 지방정치는 '태도'의 문제였다.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쓰지 않으니 주민들은 효용성을 느끼지 못했고,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 주민의 삶과 멀어졌다는 것이다. 동구의 한 주거지에 소방차가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데, 주민들이 다른 의원들에게 읍소를 해도 꿈쩍 않던 것을 직접 현장을 찾아 해결한 것이 그에게는 큰 보람이었다.

시대변화에 맞지 않는 기후대응 조례를 바꾼 것도 성과다. 한때 유행처럼 지방의회마다 기후관련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행정으로 이어지지 않는 보여주기식이 다반사였다. 박 의원은 사문화된 조례를 폐지하고 현실에 맞게 새로이 통합 확대하여 제정했다. 기후 불평등에 주목한 것도 의미 있는 점이다.
   
 의회에서 발언하는 박현정 광주 동구의원
ⓒ 광주 동구의회
 
의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

손혜진 광주 북구의원 역시 통합진보당 해산을 앞두고 출마한 것이 정치의 시작이었다. 25년 전 북구로 이사와 공부방 교사를 하고, 반찬 나눔과 김장 봉사를 16년 넘게 이어왔다. 

이에 더해 매일 500여 명이 넘는 주민께 메시지를 보내 동네 소식과 활동을 전해 온 것이 9년째, 메시지가 없는 날이면 걱정하는 연락이 올 정도로 인정받는 '동네 일꾼'이 되었다. 이처럼 꾸준히 주민과 함께하며 두 번의 출마 끝에 의회에 들어갔다.

"스무 명의 북구의회 의원 중에 무소속 두 분을 제외하고 저뿐이에요. 구청장과 동료 의원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으니 주민들의 편에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조례 개정안을 제안할 수 있는 게 저밖에 없는 거죠."

의회에 입성해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열악한 공무원들의 노동환경이었다. 권위주의적인 구청과 의회 분위기, 고용불안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손 의원은 과도한 의전을 꼬집었다.

"행사장을 가면 구청장 띄워주기, 오지도 않는 의원들 자리 비워두기에 급급해요. 주민행사에 주민들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민망한 거예요. 그래서 그러지 말자고 동료의원들 설득해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의정발언에서는 행사마다 구청장 치적으로 돌리는 게 과하다고 비판했어요. 정작 일한 것은 공무원들이고, 주민께서 불편을 감수한 것인데요.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부터 행복하게 일을 해야 주민들의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외에도 손 의원이 관심을 두는 것은 '어린이 공원'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똑같은 모습의 기존 공원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이 역시 행복한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마을과 주민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손 의원의 고민이다.
 의정발언하는 손혜진 광주 북구의원
ⓒ 광주 북구의회
광주시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두 의원이 한목소리로 비판을 높이는 대상이 있다. 바로 강기정 광주시장이다. 광주시청에서는 어린이집 보육대체교사들이 60일이 넘게 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화의 문은 열리지 않고 있다. 강 시장은 여성의날 행사에서 항의의 의미로 뒤돌아선 참가자들을 향해 '옳지 않다'며 유감을 표하고 행사장을 떠나기도 했다.

"광주시장이 나서서 광주시민의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셈이지요. 고용노동부의 민간위탁 가이드라인대로 일하시던 분을 재고용하면 되는 문제인데, 정규직화하기 싫어서 모두 해고하는 게 말이 됩니까."

박 의원은 부족한 국공립 어린이집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해고노동자만 만들었다며, 강 시장을 '철학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민들의 희망이 되고자

진보당은 광주에서 6명의 의원을 당선시키며 대표 진보정당으로 떠올랐다. 두 의원의 목표는 무엇일까.

박현정 의원은 주민들께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주민을 만나며 느끼는 게 있어요.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정치와 정치인에게 분노하시는 주민들이요. 진보정치인으로서 그런 순간마다 괴롭고 죄송할 뿐입니다.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맨날 거대 양당끼리 헐뜯고 싸우고. 서민들은 대출금리인상에, 난방비 등 공공요금을 비롯한 물가폭등에 살기 힘든데 말이죠. 저를 보고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었다며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진보정치의 효능감을 꼭 느끼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손혜진 의원은 내년에 치러질 '총선'을 꼽았다.

"목표는 무조건 내년 총선에서 진보의원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정말 많은 게 바뀔 거예요. 전국에서는 제3의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광주에서는 당당한 제2의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년 현수막과 박현정 의원
ⓒ 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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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진보당은 지방자치위원회(위원장 장진숙)를 두고,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지방의원> 연재기획은 지방자치위원회 편집팀에서 공동 취재해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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