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번역기가 고장나면 마음이 닫힌(다친)다[개척자 비긴즈]

최기영,이영은 2023. 3. 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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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다섯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있다. 그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땐 종종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분은 ‘PK(Pastor Kids)’ 즉 목회자 자녀이다. 집사님의 시선엔 늘 내 아내와 딸이 걸려 있었다. “목사님~, 사모님과 따님한테 잘 해주세요.”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충고일 거다. 목회자 딸로 유년을 보내며 망막에 새기고 귓가에 박혔던 이야기와 목회자 아내인 엄마를 바라보며 가슴에 묻었던 기억일 것이다.

그런데 사역하는 아빠에 대한 걱정은 없다. 희한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마다 “예, 집사님 잘할게요” 하며 대답했는데 집사님 보시기에 성이 차지 않았던 것 같다.

목사 또는 선교사 자녀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늘 결핍이 존재한다. 중요한 건 부모와 자녀 사이에 기억과 정보의 불일치가 상상 이상으로 심하다는 것이다. 그 결핍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생겼는지, 당사자들의 생각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어느 날 딸아이와 함께 휴대폰에 녹화된 여행 영상을 보다가 마음이 무너졌다. 좋았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한참을 얘기하다 최근 한 친구가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며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놨다. 딸 친구 여행기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근데 뭐, 괜찮아요.” 마음의 번역기가 오작동했다. 분명 “괜찮아요”라고 했는데 “안 괜찮아요”로 들렸다. 문득 이전에 딸과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그날도 아이는 자기 친구들이 어디로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 그랬을까. 의역 기능이라고는 탑재되지 않은, 직역만 가능한 ‘멍텅구리 번역기’ 같았다. 난 단지 ‘아이의 친구가 여행을 갔구나’로 들었다. 분명 그 얘기가 아니었을 거다. 의역된 핵심 메시지는 ‘아빠, 나도 그곳에 여행 가고 싶어요’였을 것이다.

아이에겐 사역 때문에 늘 바쁜 아빠의 모습이 기본값으로 세팅되어 있었던 것이다. 키보다 마음이 훌쩍 커버린 딸이 어느 순간부터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살았는지 떠올려지지도 않았다. 날카로운 송곳이 가슴을 쿡 찌르는 것 같았다. “아빠 괜찮아요~” 이 말이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가 부족해서일까. 무뎌서일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시리라는 믿음만 가져서일까. 그 믿음이 내 안에 켜켜이 쌓이는 동안 아이에겐 아직 감당하기 힘든 결핍이 쌓여온 건 아닐까. 쉴 수 있는 월요일인데도 사역으로 바쁠 때,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사역에 집중하고 있을 때 분명 놓치고 있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때를 놓치고 나면 할 수 없는 시간이 분명 존재할 텐데….’ 더 많이 사랑하려고 애썼다고 생각했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애쓴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부족했고 부족함을 다른 무언가로 ‘퉁’치려 했던 아빠는 미안했다. 가슴이 아팠다.

“하나님의 옷장을 열어보니 날 위해 준비한 사랑의 옷 가득. 날 사랑하시는 하나님 선물이 오늘도 날 찬양케 해. 노래할래요 하나님 사랑 따라갈래요. 하나님 말씀 우리에게 늘 좋은 옷 입히시는 주 은혜.” ‘하나님의 옷장’이라는 성경학교 찬양이다. 미안함에 사무쳐 아이를 떠올리면서 유독 이 찬양이 생각났다. 전도사, 부목사로서 살아가는 옷장에는 사역 성도 장례 심방 약속 수련회 기도회 예배 담당 부서, 상처받은 집사님, 입시 취업 개업 연수 이민 MT 집회 등등의 옷만 가득했다.

나에게 잘하라고 얘기한 PK집사님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늦은 것 같았다. 실패한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핑곗거리를 찾는 내가 또 싫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여행을 갈 수 있는 충분한 돈과 시간이 없었다. 넉넉하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함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다른 가족들은 흔하게 다녀오는 것처럼 보이던 놀이공원 한 번 가보지 못했다. 넉넉하지 않은 돈과 시간. 모든 것이 핑계였다. 내 마음의 옷장에는 사역밖에 없었다. PK집사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목사님 (가족에게) 잘하세요!’

교회 개척을 준비하며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내 옷장에는 단정하고 각 잡힌 양복들이 사라지고 움직이기 편한 옷들로 추려졌다. 가벼워졌다. 나는 그것을 ‘교복’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입는 옷도 단출해졌다. 가정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만남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가벼워진 지갑을 바라보지 않고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매일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이와의 대화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번역기도 조금씩 기능이 업그레이드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냈다. “OO이 집에서 공부시키면 어떨까요?” 딸의 홈스쿨링이라. 막연하게 떠올려보기만 했을 뿐 홈스쿨링에 대한 정보가 많진 않았기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집중해서 아내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등교를 시키며 보게 된 아이의 뒷모습을 그려봤다. 외로워 보였다. 혼자 등교했고 혼자 하교했다.

아빠에게 재잘재잘 얘기하는 날은 딸에게 근사한 날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집에 가는 내내 침묵한 시간도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 저학년 티를 벗은 아이가 혼자 이것도 ‘괜찮다’며 버틴 것일까.

내 탓인 것 같았다. 마음이 떨리고 흔들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이 어지러웠다.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이상 막연히 괜찮다고 생각하게 하지 말자!’ 마음을 먹었고 우리는 결정했다. 마지막 서류작업까지 학교에 넘기니 달이 바뀌었고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했다. 그렇게 홈스쿨링이란 또 하나의 개척이 시작됐다. (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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