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27% 아직까지 '회계제출 거부'…"과태료 부과 돌입"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압박에도 여전히 점검 대상의 4분의 1에 달하는 86개 노조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과태료 부과와 현장조사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해 노정(勞政) 관계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정부 요청에 따라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지 않은 노조가 점검대상 319개(해산 노조 제외) 가운데 26.9%인 86개라고 14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은 노조가 8개, 일부 서류를 누락한 노조가 78개다.
상급단체별로 살펴보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간 제출률이 크게 엇갈렸다. 한국노총 산하 노조는 173개 중 141개가 제출해 81.5%의 제출률을 보인 반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62개 중 37.1%인 23개만 제출했다. 미가맹 등 기타 노조는 전체 91개 가운데 69개(82.1%)가 제출했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달 15일까지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14조에 따라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의 단위노조 및 연합단체를 대상으로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관련 자료를 비치하고 있다는 자율점검결과서(체크리스트)와 이를 증빙할 수 있는 표지와 속지를 1쪽씩 촬영하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요구한 자료를 모두 제출한 노조는 36.7%에 불과했다. 점검 대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대 노총이 자주성 침해를 이유로 전면적인 제출 거부를 결의했기 때문이다.
한달여 사이 제출률이 2배 이상 늘어난 데엔 정부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고용부는 1차 마감 이후 자진 시정기간을 부여하는 한편, 회계 자료 미제출 노조에 대한 규제 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다. 우선 회계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는 국비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운영규정을 개정하고, 조합비 세액공제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조합원 절반 이상이 요구할 경우 회계 공시를 의무화하고, 노조 회계 감사원 자격을 제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도 내놨다.
그럼에도 끝까지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은 86개 노조에 대해 정부는 오는 15일부터 과태료 부과를 사전 통지할 계획이다. 노조법 시행령에 따르면 1회 위반한 노조에 대해선 1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2회 이상부터는 300만원이 부과된다.
특히 과태료 부과 이후에도 현장조사를 통해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거부·방해하거나 기피하는 노조에 대해선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다. 현장조사 과정에서 폭행·협박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 과태료 이외에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고용부는 밝혔다.
이정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노조 사무실에 회계 관련 서류를 비치·보존하는 것은 조합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의 기본 책무”라며 “법상 의무를 확인하기 위한 정부의 최소한 요구를 따르지 않는 것은 조합원 알 권리를 약화시키고 노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정부의 회계 자료 요구 자체가 노조 자주성을 침해하는 월권행위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만큼 노정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노조법 14조는 조합원의 대한 의무이지, 정부에 대한 의무가 아니다”라며 “다음 주 고용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는 한편 정부의 과태료 부과에 대해서도 이의신청 및 과태료 재판 등 전면적인 법률대응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국노총은 국제노동기구(ILO) 제소까지 검토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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