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 불타면 암·기형 유발물질 치솟아"…연기 덮친 대전 우려
지난 12일 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쌓여있던 타이어 21만 개가 불에 탔다.
타이어가 타면서 내뿜는 유독한 연기로 인해 주변 아파트와 주택가 주민들은 고통을 겪었고, 상가 등에서는 날아온 검은 가루를 닦아내야 했다.
불은 14일까지도 완전히 꺼지지 않아 100여 명의 인력과 헬기가 동원돼 잔불 정리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타이어 화재 진압이 어려운 것은 많은 연기와 열을 내기 때문인데, 타이어가 같은 무게의 석탄보다 더 많은 열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 1㎏은 2만7200 KJ(킬로 주울)인데, 타이어는 3만7600 KJ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장시간 매캐한 연기와 유독가스에 노출되면서 건강 피해를 염려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처럼 타이어 화재 현장에서 배출되는 유독 가스 속에는 어떤 유해물질이 들어있을까.
해외에서는 타이어 화재와 관련해 몇몇 조사·연구 사례가 있다. 주로 타이어 공장이 아니라 폐타이어 적치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와 관련된 조사다.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농도 치솟아
당시 연구팀은 24시간 타이어가 딸 때 500m 떨어진 곳, 높이 15m에서 대기오염도 측정했는데, 미세먼지(PM10)는 ㎥당 160~370㎍(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범위로 나타났고, 평균 280㎍/㎥이었다. 평상시의 7배 수준이었다.
아황산가스(SO2)도 미국 환경보호국(EPA) 기준의 3배에 이르렀다.
또, 유해물질인 다핵방향족 탄화수소(PAH)는 2918㎍/㎥로 측정됐다.
다핵방향족 탄화수소는 나프탈렌·안트라센처럼 분자 구조가 여러 개의 고리 형태로 돼 있으며, 다수가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있다.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인 톨루엔은 평균 175.5㎍/㎥, 벤젠은 94.3㎍/㎥, 에틸벤젠은 63.1㎍/㎥, 자일렌은 28.5㎍/㎥이었다.
중금속인 납은 2.06 ㎍/㎥, 구리는 2.0㎍/㎥, 크롬은 0.3㎍/㎥로 측정됐다.
연구팀은 "(소각로가 아닌) 노천에서 타이어를 소각하면 다양한 유독물질이 배출돼 사람의 건강에 위험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급성·만성 건강 위험 유발 가능성
오염물질 노출의 정도와 노출 시간 길이에 따라 건강 영향이 달라지는데, 피부·눈·점막의 자극부터 호흡기 영향, 중추신경계 억제까지 나타날 수 있고, 암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타이어 화재 근처에서 작업하는 소방관이나 기타 작업자는 호흡기·피부를 보호하는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연기 기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PA 보고서는 특히 타이어 1㎏이 탈 때 배출되는 오염물질의 양을 제시했다.
타이어 1㎏당 미세먼지(PM10, 입자 크기 10㎛ 이하)는 113.5g이 배출됐다.
금속 먼지와 유기성 먼지 등 큰 입자도 200g 이상 배출됐다.
PAH은 3.4g이 배출됐는데, 이 가운데 나프탈렌만 1g 넘게 배출됐다.
이 외에도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반(半) 휘발성 물질도 20g 이상 배출됐다.
석탄발전소 굴뚝보다 1만3000배 위험
타이어 노천 화재 때 배출되는 돌연변이 유발 물질은 벽난로에서 장작을 태울 때보다 16배 더 많고, 오염 방지시설을 갖춘 석탄화력발전소의 배출가스보다는 돌연변이 유발 가능성이 1만3000배나 된다는 것이다.
EPA 보고서는 "이런 오염물질로 인한 돌연변이는 선천적 기형이나 유산, 암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돌연변이 유발 물질로 유전자 손상이 일어나면 미래 세대에서 유전 질환의 발병률을 증가시킬 수 있고, 현세대에서는 암을 포함한 체세포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이어 화재는 대기오염 외에도 토양·수질 오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
EPA에 따르면 타이어 100만 개가 불에 타면 약 55,000갤런(약 208㎥)의 기름이 흘러나와 토양을 오염시키게 되고, 이 기름이 빗물에 씻기면 주변 하천을 오염시킬 수도 있다.
화재로 인한 오염은 '사각지대'
오히려 12일 저녁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80~90㎍/㎥로 평소의 3배 수준으로 높았으나, 화재 발생 당시인 오후 10시 이후에는 오히려 30~40㎍/㎥ 수준으로 낮아졌다.
가까운 대기오염 자동측정지점이 화재 현장에서 서남서, 남서, 남쪽으로 1~9㎞ 거리에 있었지만, 화재 당시에 초속 3~5m의 북서풍이 계속 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화학안전관리단 관계자는 "13일부터 화재 현장 부지 경계와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복합측정기로 VOC 등을 측정했는데, 특이한 점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2012년 경북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이후 화학물질관리 제도가 많이 강화됐지만, 이번처럼 화재의 경우 직접적인 화학물질 누출이 아니라는 이유로 환경부 등에서도 주민의 오염 노출에는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얼마나 노출됐는지, 문제가 없는 수준인지 확인하고 주민들을 안심시켜주는 차원에서도 소변 검사 등 노출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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