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 측정기 앞, 당황한 노인들의 눈동자를 보았다

전미자 2023. 3. 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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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간 병원, 접수에서 수납까지 모두 키오스크로 전환...노인을 위한 배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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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자 기자]

"아따, 왜 이리 어렵다냐?"

손가락에 힘을 꾹 줘 눌러도 요지부동인 기계 앞에서 할머니가 난감한 눈동자로 말했다. 뒤로 줄 서 있는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기다린다 생각하니 더 당황하신 얼굴이었다.

"할머니, 주민등록번호부터 누르셔야 해요."

보다 못해 내가 나서서 말했다. 하지만, 등록 안 된 환자라 떴다.

"번호 맞는디. 왜 이랴."
"할머니, 혹시 진료영수증 가져오셨어요?"

할머니가 가방에서 꼬깃꼬깃한 진료영수증을 꺼내줬다. 영수증에 있는 바코드를 스캔하니 이름이 떴다.

"잉, 맞네. 맞아. 내 이름."

알고 보니 주민등록번호 끝자리를 잘못 누른 거였다. 요지부동했던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1분도 안 돼 혈압이 측정되어 담당의에게 데이터를 넘겼다는 메시지가 떴다. 할머니가 일어섰고, 드디어 차례가 되어 휠체어 앉은 친정엄마를 부축해 혈압을 측정하려는데, 옆 기계에 앉은 할아버지가 대뜸 소리쳤다.

"나도 해줘야지!"
"네?"
"할머니는 봐주고 난 안 봐줘?"

'아니, 대체 이게 뭔 소리지?' 생각하는 순간,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이 병원 직원 아녀?"
"아닌데요. 제 친정엄마 측정하려 줄 서 있었던 건데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할아버지가 멋쩍게 웃으며 도와달라 부탁했다. 어떻게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결국 내 친정엄마 외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 분의 혈압 측정을 도와드렸다. 그분들이 귀찮거나 짜증스럽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내가 직접 보고 느끼니까 말이다.

접수, 수납까지 키오스크... 혈압 측정까지 기계로
 
 키오스크
ⓒ 언스플래쉬
 
두 달에 한 번, 혹은 석 달에 한 번 친정엄마를 모시고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에 간다. 팔순이 넘어가자, 노인성 질환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친정엄마가 진료받은 곳엔 노인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처럼 자식이 챙기거나 노부부가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반대로 홀로 병원에 오시는 노인분들도 많았다. 정정하시니까, 아직 걸어 다닐 기력이 있으니까 좋으시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안타까운 장면을 보거나 대하곤 한다.

간호사 말을 이해 못 해 결국 짜증 듣는 할머니, 받아야 할 검사가 많은데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간호사만 보는 할아버지, 아예 등록조차 할 줄 몰라 어린 애처럼 당황해하는 모습까지. 

그걸 보자면, 자식들은 없나? 왜 혼자 오셨지? 도와줄 누구도 없을까? 짜증 내는 간호사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안 되냐고 말하고 싶어도, 그들도 고충이 많으니까, 그저 보기만 할 뿐, 나설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은 병원 로비에 직원보다 로봇 AI을 더 많이 만들었고, 각 진료대기소에 설치된 키오스크가 환자 등록 업무를 처리했다. 전 같으면 간호사를 통해 등록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등록 상관없이 측정했던 혈압도 환자가 기계에 등록해야만 측정할 수 있었다. 수납도 자동화로 바뀌어, 수납 직원은 줄어들고 대신 키오스크가 늘어났다. 경제성과 효율적인 측면에선 당연한 변화였지만, 노인에 대한 배려는 없어 보였다.

병원 찾는 주 고객층을 자세히는 몰라도, 나이가 들수록 병원 다닐 확률이 높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술적으로 최첨단을 걷는 병원도 좋지만, 노인분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은 없을까? 병원 찾은 노인분들이 편리성을 위해 설치한 장비로 불편스러움을 겪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들곤 했다.

나도 병원에 가게 될 텐데

지루한 대기 끝에 친정엄마의 진료 순서가 됐다. 의사와의 진료는 고작해야 5분을 넘지 못했지만, 내가 엄마와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적어도 내 엄마는 기계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짜증 섞인 간호사의 잔소리를 들을 필요 없도록 내가 다 처리하니까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 친정엄마가 말했다.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아파서 병원 가는 게 왜 미안한 일일까? 늙어 아픈 게 당연한데, 왜 자식에게 미안해야 할까? 그 말에 혼자 병원 오신 노인분들도 아마 자식에게 미안했기에 혼자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나 또한 늙는다. 나도 내 엄마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노인성 질환으로 병원에 갈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때의 나도 기계 앞에서 당황해하고, 간호사의 잔소리에 속수무책으로 듣고만 있을까? 늙는 것도 서러운데, 최첨단을 걷는 병원이 더 서럽게 만드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이 늙어간다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주 이용하는 병원 시스템도 거기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노인을 위한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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