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혈세 1500억 사용?…‘왜곡 정보’로 노조 때리는 대통령

한겨레 2023. 3. 1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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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의 나라살림][윤석열 정부 노조탄압][한겨레S] 이상민의 나라살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이 지난달 20일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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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노동조합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쏟아낸다. “지난 5년간 국민의 혈세로 투입된 1500억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노조는 회계 장부를 제출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반발한다”면서 조합비 회계자료를 요구한다. 만약 윤 대통령 말대로 나랏돈을 쓴 노조가 내역조차 밝히지 않는다면 큰 문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보조사업을 수행한 단체 회계 담당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정부 보조금 사업은 더러워서 다시는 안 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보조금 회계 처리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엉성하고 널널한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친 관료적 형식주의가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정부 보조금으로 전봇대를 세우는 데 하루가 걸리지만, 회계자료 등 보고 서류를 작성하는 데에는 이틀이 걸린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만약 보조금 사업을 수행하고 관련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이미 보조금은 회수되었을 수밖에 없다.

노조 향한 대통령의 엉뚱한 주장

윤 대통령은 왜 정부 지원금을 사용한 노동조합이 회계 장부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발언했을까? 이는 두개의 전혀 다른 개념을 혼동한 결과로 보인다. 정부 보조금 사업의 회계 처리 문제와 보조금 사업을 수행한 단체의 회계자료 제출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해 보자. 쉽게 비유를 하자면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비용을 지불했으면 내역서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업체의 고객 명단, 재무제표, 각종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일단 윤 대통령은 ‘정부 지원금’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국고보조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국고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정부가 수행해야 할 행정서비스를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이 대신 수행했기 때문이다. 국가 사무의 일부를 대신 수행하고 받은 돈이 국고보조금이다. 즉, 특정 단체를 지원하고자 준 돈이라기보다는 특정 보조사업 비용 등을 준 것이 보조금이다. 정부 사업을 수행했으면 돈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2021년 노동조합이 수행한 정부 보조사업 중 가장 큰 규모는 한국노총이 수행한 ‘노동자 법률상담 구조사업’(15억원)이다. 노동자 법률상담 사업은 국가의 책무다. 그런데 이 사업을 정부보다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민간단체가 있다면 보조금을 주고 맡기는 게 좋다. 15억원을 받고 보조사업을 수행한 한국노총이 이 돈을 해당 사업에 지출했는지는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래서 보조사업 수행 단체인 한국노총은 관련 증빙서류를 모두 이미 제출했다. 보조금 지급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관련 회계서류를 꼼꼼히 확인하고 기획재정부 보조사업평가단도 재차 확인한다. 그런데도 미덥지 않으면 보조금 관련 회계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해도 나쁠 것은 없다. 다만, 보조금 사업의 회계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하지는 말자.(보조금 사업 수행자가 제출하지 않은 것은 보조금 사업과 관계없는 노동조합의 조합비 회계 관련 서류다.)

그리고 노동조합이 수행한 보조사업의 총액은 2021년 45억원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가 예산을 편성한 마지막 해인 2017년 노동조합이 수행한 보조사업 총액은 45억원이다. 문재인 정부 4년간 노동조합이 수행한 국고 보조사업 금액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동안 민간 보조사업은 13조원에서 23조원으로 약 75% 증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보조금은 213억원에서 490억원으로 무려 130% 폭증했다. 노동조합 보조금 사업 규모는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감소했다.

그나마 보조사업 수행 노동조합도 편향되어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중앙정부가 노동조합에 지급한 보조금 총액은 230억원이다. 이 중, 한국노총 및 소속 노동조합이 수행한 사업의 보조 금액은 전체의 약 83%(191억원)를 차지한다. 반면 민주노총이 수행한 보조사업은 5년간 단 1건도 없다. 다만, 민주노총 소속 산별 또는 개별 노조 등이 수행한 전체 보조사업은 5년간 7.3%(17억원)에 불과하다. 특히 전국노총이 활동했던 2017년, 2018년 전국노총 보조금 총액은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수행한 보조금보다 더 많다. 전국노총이 생소해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민주노총 해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이 거의 유일한 기사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5년간 수행한 가장 큰 규모의 중앙정부 보조금 사업은 ‘대구경북지역 토목건축 노동조합’이 7900만원을 받고 수행한 ‘도시재생사업 목수학교’ 사업이다. 목수 기술을 공무원이 직접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업을 수행하는 노동조합에 7900만원의 보조금 지급을 두고 ‘민주노총을 지원’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물론 7900만원이 잘 집행되었는지 회계자료는 이미 잘 제출되었다.

국고보조금이 매년 45억원 내외라면, 5년간 1500억원을 노조에 ‘지원’했다는 윤 대통령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는 지방정부 보조금까지 다 합쳤기 때문이다. 각종 협회, 연합회, 협동조합 등에 많은 지방보조금을 주면서 노동조합에만 안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관리할 건 중앙정부 보조금만이다. 지방보조금 관리 주체는 해당 지자체다. 즉, 인테리어 공사 대금을 주었다고 고객 명단과 각종 회계자료를 달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옆집(지자체)이 인테리어 공사 대금을 주었다고 나에게 고객 명단 등을 달라는 것은 더욱 이상하다.

‘지켜야 할 선’ 넘지는 말아야

노동조합의 회계가 투명하게 조합원에게 공개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최근 조합원 명단, 회의록, 경영자료 및 각종 증빙자료가 조합원에게 잘 공개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며 문서의 표지와 내지 일부를 요구한다. 노동조합은 표지는 대부분 제출하면서도 내지는 제출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조합원 명단 등 민감한 내부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노동조합 재무제표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가 세금 공제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부분도 있다.

결론을 내자. 첫째, 국고보조금 증빙은 이미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 만약 의심스러우면 이미 제출된 회계자료를 다시 살펴보고 문제가 있으면 보조금을 회수하면 된다. 둘째, 조합원 명단, 회의록 등 각종 증빙자료가 조합원에게 잘 공개되고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정부의 요구는 합당하다. 다만, 내지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셋째, 노동조합의 재무제표는 공개 수준을 확대해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사적 자치의 영역과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두 가치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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