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애창곡이 준 모욕감

곽우신 2023. 3.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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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전대 대통령 입장곡으로 등장한 <레미제라블> '민중의 노래' 아이러니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곽우신 기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 뮤지컬 <레미제라블> 1막 No.22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 중에서

8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 제1전시관 1홀, 기자단석에 앉아있던 기자는 흠칫 놀랐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전당대회에 참석해 입장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비록 음악만 연주되고 있었으나, 머릿속에 자연스레 노랫말이 떠올랐다. 틀릴 리가 없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 넘버인 '민중의 노래'였다.

처음 '붉게! 검게!(Red & Black)'로 시작할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민중의 노래'가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기분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레미제라블>의 주요 넘버들을 어레인지한 대통령 입장곡은 '내일로(One Day More)'로 넘어갔다가 다시 '민중의 노래'로 돌아왔다. 보수 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이 입장하는 데, <레미제라블>을, 그것도 '민중의 노래'를 메인으로 틀었다고? 그 현장을 실시간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치 내가 모욕당한 것 같은 불쾌감마저 들었다.

윤 대통령 입장에 등장한 <레미제라블> '민중의 노래'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 참석하며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 대통령의 입장곡은 정치권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대통령 입장 음악으로 이걸 고른 사람은 윤리위 가야 할 듯"이라고 비꼬았다.

그러자 김행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이 곡은 대통령님이 자유를 의미하는 곡이라며 가장 좋아하시는 곡"이라며 "대통령실에서도 이 곡을 쓴 적이 있다"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도 해명에 나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진정한 약자, 서민을 힘들게 하는 기득권 이권 카르텔에 대한 근절 의지는 입장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라며 "진짜 약자들의 외침을 정부가 귀담아야 들어야 한다. 이분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한다는 그 결기를 다지는 노래"라고 이야기했다. "이 노래는 윤 대통령이 평소 가장 선호하는 애창곡 중 하나"라며 "저희는 익숙한데, 어떻게 전대에서 알고 (윤 대통령의 입장 배경음악으로) 틀었는지 모르겠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오히려 논란에 불을 더 붙이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해당 노래의 사용이 적절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불쾌하다며, 작품을 모욕한 선곡이라는 감상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저 대통령 입장에 배경음악으로 쓰인, 지나가는 노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이처럼 분개하고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이유는 노래마다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극의 서사 속에서 그 의미를 갖고 생명력을 얻는 뮤지컬 넘버는 말할 필요도 없다. 노래는 그 역사에 따라 기존의 의미가 강화되거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청와대에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역사적 사건이 되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이화여대 시위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받는다.

'민중의 노래'가 가진 이야기와 역사

반대로 그 노래가 원래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맥락 그리고 거쳐 온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남용하게 되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예컨대 <지킬 앤 하이드>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은 잘 안다. 그러나 <지킬 앤 하이드>를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품은 희망이 그 이후 어떻게 좌절되고 결국 주인공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감동이 폭발하는 건 그 비극미가 화룡점정을 찍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파멸의 전조를 부디 신혼부부의 앞날을 축복해야 하는 결혼식 축가로 부르지 않길 당부하는 것이다. 

그저 결혼식의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끝날 일이면 차라리 낫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잘 알려진 것처럼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작품 곳곳에는 프랑스 민중, 힘 없고 가난한 피지배계층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성공한 혁명이 아니라 실패한 6월 봉기를 주제로 삼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처참한 희생과 실패로 끝나 버렸지만, 그 희생이 다음 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프랑스 민주주의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레미제라블>을 상업 뮤지컬화 하면서도 원작의 정신을 잘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여기에는 극본과 가사를 풀어낸 알랭 부빌이 튀니지 출신의 이민자였던 배경도 한몫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
ⓒ UPI코리아
  
이후 '민중의 노래'는 운동과 혁명의 새로운 상징으로 여겨지며 일종의 민중가요처럼 많은 곳에서 불리게 된다. 튀르키예즈와 미얀마에서, 대만과 홍콩에서 그랬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흥행한 건 2012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줬기 때문이다. 2012~2013년 시즌은 한국에서 <레미제라블>이 첫 라이선스 공연된 때이기도 하다.

'민중의 노래'가 한국 광장에서 가장 각인된 건 2016년부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다. 촛불집회의 현장에 이 노래가 울려 퍼졌고, 공연 배우들까지 직접 나와 이 노래를 부르며 시대와 시민과 함께했다. 광장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노래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일'

위대한 문화 콘텐츠를 특정 계층이나 이념, 정파나 정당이 전유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다만 TPO(시간·장소·상황)가 맞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노래방에서 부르는 게 아니라, 공인이 등장하는 공식적인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연주되는 곡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5월 광주의 영령들을 기리는 곳에서 '멸공의 횃불'을 튼다고 상상해 보라.

박근혜씨를 끌어내리자고 시민들이 부르던 노래가, 그 전직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재생됐다. 국민의힘의 전당대회는 축제의 장이고,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곳은 승리의 공간이다. 설사 패배할지언정 숭고한 목표를 위해 나아가자는 이 노래의 정신과 별로 맞닿지 않는다. 또한 '민중의 노래'는 명백히 권력이 없는 사람들의 노래다. 야당 전당대회에서 틀어져도 어색한 노래를 통치 권력을 쥔 집권여당이 연주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 배경을 따져 보면 더 이질감이 느껴진다. 6월 봉기는 7월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가 약속을 저버리고 민중의 기대를 배반한 탓에 발생했다. 선출된 현재 권력이, 주권자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있다는 뜻인데, 그 노래를 현 행정부의 수장 입장곡으로 정했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단상에 올라 주먹을 쥐며 당원들에게 어퍼컷 인사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이 정부가 지난 1년간 걸어온 궤적을 돌아보라. 작품 속 '아베쎄(ABC)의 벗'이 흘린 피는 수많은 민주투사들과 노동자들이 흘렸던 피와 닮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노동관은 어떤가? 바리케이드의 전투가 끝난 후, 시민들이 이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는 사회적 참사와 재난을 애도하는 시민들의 눈물과 닮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누가 제대로 책임을 졌는가?

그뿐인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을 '청년 착취의 주범'으로 몰면서, 말끝마다 '2030'과 'MZ세대'를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소환하고 있다. "주69시간제, 2030도 좋아한다"와 같은 말을 집권세력이 하고 있을 때, 정작 그 세대 다수가 노동시간 유연화에 반대하고 있으며, 그 유연화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같은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잘못된 신념으로 왜곡된 '법과 상식, 공정'을 부르짖는다고 한들 그 말로가 아름답기는 쉽지 않다. 엄정한 법치와 원칙을 외쳤던 자베르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그간 자신이 지켜왔던 신념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고, 그 괴리를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민중의 노래'가 정말 윤 대통령의 애창곡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정말로 <레미제라블>을 봤는지도 궁금하지만, 상관없다. 올해 말에 <레미제라블> 라이선스 공연이 돌아올 예정이니, 이번 기회에 극장에 가시어 한 번 관람하기를 적극 권해드린다. 그리고 작품의 메시지와 노래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게 말끝마다 '자유'를 외치면서 정작 거꾸로 가고 있는 이 정부의 기조와 맞는 것인지 한 번 고민해주시길 부탁드린다.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이 노래를 부르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에 설 수도 있다. 그가 어느 쪽에 서게 될 지는, "내일이 오면"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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