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내려놓으시라'는 전 비서실장 빈소 찾아 7시간 만에 조문
“(이재명)대표님.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지요”
9일 숨진 채 발견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64)씨가 남긴 유서에 이런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장례식장 인근에서 7시간을 기다리다 10일 오후 7시 45분쯤 전씨의 빈소를 찾은 이 대표는 20여분 정도 조문하고 현장을 떠났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유가족에게 ‘고인은 제가 만나 같이 일한 공직자 중에 가장 청렴하고 유능한 분이셨는데 너무 안타깝다’는 애도의 말을 전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씨는 전날인 9일 오후 6시40분쯤 성남시에 있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선 노트 6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열심히 일만 했는데 검찰 수사 대상이 돼 억울하다. (성남FC) 당시 행정기획국장이라 권한도 없었는데 피의자로 입건됐다”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는 등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에 대한 억울한 심경도 들어있다. 이재명 대표의 이름을 언급하며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라”“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겼다고 한다. 남겨진 가족에 대해 미안함과 걱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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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 기다려 조문한 이재명, 20분 만에 빈소 나와
전씨 사망 다음날인 10일 민생 경청 투어를 위해 경기도를 찾은 이 대표는 수원시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현장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전씨가) 검찰의 압박수사에 매우 힘들어했다”며 “검찰이 없는 사실을 조작해서 자꾸 증거를 만들어 들이대니 빠져나갈 수 없고, 억울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오후 1시쯤 전씨의 빈소가 차려진 성남시의료원을 찾았다. 하지만 유가족과의 협의가 늦어지면서 7시간이 지나서야 빈소로 들어갔다. 취재진이 “정치 내려놓으시라는 유서 내용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고인과 마지막으로 언제 연락했나”, “고인의 사망 원인이 검찰 압박수사 때문이라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을 했지만 이 대표는 침통한 표정만 보일 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일부 보수 유튜버들은 이 대표를 향해 ‘저승사자’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 대표의 조문은 20여분 만에 끝났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이 대표가 조문 후 유가족과 사적으로 대화했다. 유가족도 유서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며 “유가족은 이 대표에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 대표님도 힘을 내시고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잘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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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FC 사건으로 지난해 12월 검찰 조사
성남시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전씨는 2016년 수정구청장, 2017년 행정기획조정실장(3급)을 거쳐 이재명 전 지사의 당선 직후 당선인 비서실장, 도지사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까지 GH(경기주택도시공사)의 경영지원본부장 겸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퇴직했다. 이헌욱 전 사장이 이 대표의 대선 캠프로 자리를 옮긴 뒤로는 사장 대리를 맡기도 했지만, 퇴직 전후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전씨도 지난해 12월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또 최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그룹 뇌물수수 혐의 사건 공판에서 2019년 5월 김 전 회장의 모친상에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대신 비서실장 자격으로 조문했던 사람으로 전씨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다.
전씨의 유가족은 경찰에 “전씨가 최근 언론 등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지인들도 “전씨가 성남FC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고인을 상대로 지난해 12월 26일 ‘성남FC’ 사건과 관련해 한 차례 영상녹화 조사를 진행했고, 그 이후 별도의 조사나 출석요구는 없었다. 그 외 검찰청에서도 조사나 출석요구를 한 적 없다”며 “이 전 부지사에 대한 공개재판 과정에서도 고인과 관련된 일부 증언이 있었지만 이와 관련해 조사하거나 출석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씨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전해지지만, 전씨 유가족은 공개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유가족이 유서 내용 공개를 원치 않아 유서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전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정확한 사망 경위를 밝히기 위해 시신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유가족이 원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유동규 “이재명, 책임질 건 책임져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도 이날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재판에 출석하면서 “(전씨가) 이재명의 여러 가지, 사소한 것도 좀 많이 챙겼다고 생각한다”며 “(이 대표) 본인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하는데 항상 뒤로 물러나 있으니 그렇다. 저는 제가 책임지겠으니 그분들은 책임질 것은 책임져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모란·손성배·김홍범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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