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각박한 삶 ‘야버즈’와 닮았네

김남중 2023. 3. 9. 20:5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과 길] 야버즈
전춘화 지음
호밀밭, 200쪽, 1만4000원


조선족 작가 전춘화(36·사진)의 소설집 ‘야버즈’가 부산의 한 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이 놀라운 데뷔작은 지금 한국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현대적인 조선족 소설이 마침내 등장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지배적인 조선족 서사를 뒤흔든다.

전춘화는 서울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쓴다. 중국 길림성 화룡시에서 태어나 연변대 조문학부를 졸업했고, 2011년 한국에 와서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10년 전 우리말로 쓴 제 소설을 읽어 줄 독자를 만날 꿈을 안고 한국에 왔다”고 한다. 20대 중반까지는 중국 연변에 살면서 한글로 소설을 썼다.


‘야버즈’는 단편소설 다섯 편을 수록했는데,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조선족이다. 독자들은 앞에 나오는 세 편의 소설을 통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을 만나게 되고, 뒷쪽에 배치된 두 편을 읽으며 그들의 과거를 들여다 보게 된다.

표제작 ‘야버즈’는 서울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신혼부부 경희와 용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 젊은 세대의 고민을 묘사한다. “하다못해 마라탕과 양꼬치도 한국에서 정착을 했는데 우린 이게 뭐니.”

야버즈는 중국 음식의 이름으로 ‘오리 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임신을 한 경희는 야버즈를 무척 좋아한다. 작가는 차이나타운에 가면 맛볼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이 음식을 한국 내 조선족들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다. 낯설고 이질적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씹히는 건 딱딱한 뼈인데 혀를 현란하게 움직여 뼈만 밖으로 뱉어 내고 고기를 훑어 내야 하는” 먹는 방식이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삶의 스킬”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단편 ‘낮과 밤’은 한국에서 일하는 젊은 조선족 여성이 중국에 사는 조선족 친구와 전화로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의 어둠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아 낸다. ‘블링 블링 오 여사’는 뒤늦게 한국으로 이주해 간병인으로 일하는 조선족 오 여사의 모습을 그린다.

전춘화는 “정착이나 완전한 동화를 꿈꾸면서도 어쩐지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저 같은 중국 동포 젊은 세대들이 한국 땅에서 어떻게든 ‘야버즈의 삶’을 살아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단함과 퍽퍽함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긍정적이고 씩씩하다. 딱딱한 뼈를 뱉어내고 맛있는 살을 훑어 먹는 것처럼 그들은 한국이라는 낯선 땅을 헤쳐 나간다. 소설집은 조선족 서사를 감각적이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작가가 젊은 여성이고,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성적 시선으로 구성한 조선족 서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전춘화가 만들어낸 여성 조선족들은 민족이나 디아스포라 같은 거대 담론에 휩쓸리지 않는다. 또 “모두들 포수가 쏜 총에 놀란 노루처럼 뿔뿔이 흩어져 눈에 보이는 대로 무작정 뛰”는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우물가의 아이들’에 나오는 주인공 소녀처럼. “나는 정처없이 앞으로만 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몸을 한껏 웅크렸다. 보이지 않는 우물의 밑바닥에 닿아 보고 싶었다.”

‘잠자리 잡이’와 ‘우물가의 아이들’은 작가가 연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조선족을 주제로 한국 작가들이 쓸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를 벗어난, 조선족 작가만이 쓸 수 있는 깊숙한 이야기다. 작가는 마치 동화처럼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조선족들이 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주의 역사가 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그들이 낯선 땅에서 품고 사는 슬픔이나 자존심의 기원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려준다.

전춘화는 디아스포라라는 역사보다, 조선족이라는 민족보다, 개인의 삶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아스포라라는 거대한 것이 평범하고 작은 존재인 개인의 배경 정도로만 등장했으면 좋겠거든요. 역사든 사회든 그 어떤 거대한 것도 작은 개인의 삶을 흔들 수는 있지만 결코 압도할 수는 없는 거니깐요.”

호밀밭 출판사는 “중국 동포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서 10여명을 검토했는데 전춘화의 소설은 자기연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달랐고, 젊은 세대의 목소리라는 점에서도 기존 작품들과 분명히 달랐다”고 설명했다.

전춘화의 소설들은 그동안 중국에서 발행되는 조선족 문예지들에 발표됐다. 이번 소설집에는 기발표작 세 편과 미발표작 두 편이 실렸다. ‘야버즈’와 ‘우물가의 아이들’은 중국 정치나 역사에 대한 몇몇 묘사가 중국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발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전춘화는 자신의 첫 소설집을 한국에서 출간하며 이 작품들을 수록했다. 그것은 한국 문학으로 이주한다는 작가의 선언처럼 보인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