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심사조차 안해주더라" 서러운 육아휴직자 [출산율 0.78의 나라]

김경희 2023. 3. 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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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쇼핑몰에서 육아 용품을 살펴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국내 대기업에 다니다 육아휴직 중인 이모씨(36)는 지난달 A은행에서 신용대출 심사를 거부당했다. 이씨는 “지점 직원이 육아휴직 중인 경우엔 복직의 불확실성 때문에 본사에 대출심사 자료를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며 “주변에서 휴직 전에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둬야 한다고 할 때 웃어넘겼는데 긴급한 상황이 되고 보니 육아휴직자에 대한 ‘대출 장벽’이 너무 높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손모씨(37)는 지난해 육아휴직 중 회사와 연계된 B은행에서 신용대출을 받으려다 좌절했다. 육아휴직 중인 경우 연 소득의 50% 한도 내에서 신용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서다. 연봉이 6000만원이라면 3000만원 이내로 대출이 가능했는데 손씨는 이미 그 이상의 다른 대출을 보유하고 있다. 손씨는 “회사 우대금리를 적용한 신용대출 이자가 1%포인트 정도 낮기에 이걸로 기존 대출을 일부 상환하고 싶었다”며 “육아휴직자 신분이라는 게 새삼 서러웠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자들이 은행권의 높은 대출 장벽에 울상을 짓고 있다. 고물가·고금리로 육아휴직 급여만으로 살기 힘들어졌는데, 급히 자금을 마련할 수단인 신용대출마저 받기가 힘들어져서다. 금융권이 저출생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자료: 고용노동부

중앙일보가 이씨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 있는 5대 시중은행의 일부 지점에서 대출 상담을 받아본 결과 A은행 지점은 육아휴직을 포함해 휴직 중인 경우 신용대출 심사를 해주지 않았고, B은행 지점은 원칙적으로 휴직 전 소득을 절반만 인정해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A은행은 “대출 여력이 좋지 않은 일부 지점에서 심사를 거부한 것 같다”고 밝혔고, B은행은 “지점장의 재량에 따라 전년도 소득을 전부 인정해주는 경우도 많은데, 일부 지점에서 규정을 보수적으로 해석해 대출이 어렵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명했다.

나머지 은행은 휴직 중인 경우 전년도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 등으로 소득을 증명하면 대출심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휴직 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 전년도 소득이 줄어 대출한도가 줄어들 수 있고, 우대금리 적용이 어려워진다.

캐피탈 등 제2금융권은 이런 현실을 과장하거나 역이용해 육아휴직자를 상대로 대출 상품을 마케팅하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은행이 육아휴직자를 사실상 무직자로 간주한다” “금리가 좀 높지만 육아휴직 중 긴급자금 대출에 성공했다” 등 자사 상품 이용을 유도하는 홍보글이 넘쳐난다.

포털에서 육아휴직 신용대출을 검색하면 제2금융권에서 모객을 위해 올린 홍보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도 이런 현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씨처럼 창구 상담 과정에서 돌려보내는 경우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출 자격이나 한도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영역이다보니 육아휴직자를 재직자와 똑같이 대우하라고 강제하긴 어렵다”면서도 “단지 육아휴직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개선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저출산 재앙'이 현실화 한만큼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적극적으로 대출 장벽 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책이 좋은 예다. 경남 창원시는 2021년부터 BNK경남은행과 MOU를 맺어 육아휴직자도 재직자와 똑같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창원시에서 1년 이상 재직했다면 연 4.8% 금리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창원시 관계자는 “수요가 폭발적이진 않지만 단 한두 명이라도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육아휴직자가 차별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육아휴직자가 고금리나 사채시장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은행권이 정부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차원에서 오히려 육아휴직자에 대한 대출한도를 늘리거나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식의 과감한 마케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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