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 수-아파트값-서울대 입학자수, 6개구가 독식 [이슈&탐사]
자녀가 한국사회 엘리트로 자라길 바라는 학부모들의 교육 투자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교육 투자는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교육비에서 알 수 있듯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으며, 부모의 경제력은 자녀의 학력 성취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서울 자치구별 부동산 가치와 영어유치원 설립 숫자, 서울대학교 입학자 숫자는 최근 수년간 유사한 순위를 보였다. 이 흐름은 ‘강남 3구’를 넘어 다른 자치구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수많은 변수와 오류 가능성을 뛰어넘어 ‘영어유치원을 나오면 서울대에 입학한다’는 간편한 결론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부동산과 교육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양극화한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현실, 그 현실에 발맞춘 한국인의 행동 양식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 학력으로 연결되기 유리한 한국사회’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부의 세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한국사회’를 읽었다.
국민일보는 민형배 무소속 의원실을 통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연간 서울 자치구별 영어유치원 숫자, 서울대 입학자 숫자(고교 소재 기준)를 확인하고 이 순위를 자치구별 아파트 가격과 비교했다. 상이한 주제로 줄 세운 결과였지만 자치구의 순위는 항목을 초월해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말 기준 강남구는 ㎡당 아파트값(2705만원), 영어유치원(45곳), 서울대 입학자(259명) 모두 1위였다.
이 순위표는 최근 5년간 큰 변동이 없었다. 강남구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아파트값-영어유치원-서울대 입학자 3가지 항목 모두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서초구는 강남구에 이어 5년간 한결같은 2위-3위-3위를 기록했다.
5년간 변함없이 3가지 항목 모두 상위 10위권에 든 자치구는 5곳(강남 서초 송파 광진 양천)이었다. 서울시 자치구가 25곳임을 감안하면 교육·부동산 측면에서 집중 및 불균형 현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파트값 항목을 11~12위까지로 늘려 보면 강동구까지 일종의 ‘톱6’를 형성했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강남 3구’와 광진구 양천구 강동구에서 교육 투자 정도가 컸고, 서울대 합격률도 높았다.
특정 자치구의 이름이 계속 등장하는 아파트값과 영어유치원, 서울대 합격 순위표는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얼른 인과관계라 말할 수 없으나 일종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부모 경제력과 자녀 학력이 무관하지 않고, 명문대를 위한 교육 투자 수단에 영어유치원이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교육비 수준을 고려하면 영어유치원은 차별성이 있는 지표”라고 했다. 학부모가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낸 사실은 자녀가 이후에도 계속 지원을 받을 개연성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학계에서도 여러 차례 보고돼 상식에 가깝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2014)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2015)에서 서울대 진학률 차이가 학생의 순수한 능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 차이로 설명됨을 입증했다. 연구진이 학생 ‘본연의 잠재력’을 구해 따진 서울대 합격률은 강남구가 0.84%, 강북구가 0.50%로 엇비슷했다. 현실 세계에서는 강남구(2.07%)가 강북구(0.11%)보다 20배가량 서울대 합격률이 높다.
구교준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의 ‘우리는 기회가 균등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2016)도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소득 1분위(하위 10%)와 10분위(상위 10%)의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진학 가능성을 예측한 결과 그 확률은 각각 0.26%와 1.25%로 4.8배 차이가 났다.
국민일보가 서울 자치구별 아파트값과 영어유치원, 서울대 합격자 숫자 순위를 제시하자 구 교수는 “다 연결된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영어유치원은 생애 주기를 따라 이어지는 한국 교육-소득-건강 격차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여러 역량 분야의 기회 불평등으로 순환한다고 구 교수는 보고 있다.
경제력이 학력 성취를 뒷받침하고 성취된 학력이 경제력으로 환원되는 현상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어느 한쪽에서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교육 투자 과열의 구조적 원인부터 살펴야 한다는 진단도 많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대학은 경력에서 유리한 출발점을 제공한다”며 “선제적으로 빨리, 많이 투자하는 집단을 비판만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파브리지오 질리보티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울어진 교육’에서 ‘집약적 양육’이 일반화된 국가들의 특성을 짚었다. 소득 불평등이 큰 나라, 학업 성취가 장래의 삶에서 중요하게 인식되는 나라일수록 교육 투자가 크다는 것이다.
영어유치원을 둘러싸고 “자녀를 위한 투자는 정당하다”는 시각도 “양극화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둘 다 맞는 말이며, 현실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양극화한 노동시장에서 자녀가 우위를 점하기를 바라는 이들이다. ‘주어진 사회’를 받아들여 이로움을 추구하는 개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선택들 속에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소득 불평등과 사교육 과열 문제는 심화된다.
근본적 문제는 학력제일주의이며 학부모 다수는 교육 투자에 성공하지 못한다. 주 교수는 “상위 1% 대학을 나오면 큰 특권을 누리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80%는 중소기업”이라며 “과연 교육 투자 이익이 크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일보 설문조사 결과 영어유치원 학부모 33%는 자녀가 의료인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어린 시절 영어유치원을 다녔던 성인 100명을 함께 설문조사했을 때 본인이 의료인이라 답한 이는 3명이었다.
이슈&탐사팀 정진영 박장군 이택현 이경원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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