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탁위에 금융 전문가 넣는다...일각선 기업 개입 우려
정부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방향을 자문·주도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위원에 전문가 단체 추천 민간 전문가를 넣기로 했다. 일각에선 연금을 통한 정부의 기업 개입이 노골화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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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가입자 단체 추천만…“전문성 약해”
수탁위는 기금위 산하에 있는 3개 전문위원회 중 하나로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자문 기구다. 국민연금이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하면서 만들어졌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 집사(steward)가 돼 투자 중인 기업을 잘 감시하고 관리해 노후 소득을 지키는 제도다. 과거 주주총회에서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비판을 받던 국민연금이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도입 초기부터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 지배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현재 수탁위는 가입자단체(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가 각각 추천한 인사들로 상근 위원(3명)과 비상근 위원(6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투자정책전문위원회와 위험관리·성과보상전문위원회 등 나머지 2개 전문위에서 기금위 위원(3명)을 포함하고, 비상근 위원 3명을 전문가 단체 추천 인사로 임명하는 것과 다르다.
기금위는 “수탁위는 비상근 위원 6명 모두 가입자 단체 추천을 받도록 해 타 전문위에 비해 대표성이 강화된 대신 전문성이 약하다”라고 설명했다. 수탁위의 전문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기금위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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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근 위원 3명, 전문가 추천받아 위촉
2020년 2월부터 지난달까지 임기를 마친 1기 위원 9명 중 6명은 법률가·회계사 등 특정 분야에 집중돼 자산운용·책임투자 현장 경력 전문가가 부재했다고 본다. 2기(23.2~26.2)로 추천받은 후보도 21명 주 법률가(8명)·회계사(4명) 등에 집중되고 자산운용(2명)·책임투자(0명) 경력 등은 희소하다는 판단이다.
기금위는 “다양한 전문 분야 위원으로의 구성이 필요하지만, 현재 운영 규정상 수탁위 위원은 가입자단체로만 추천을 받도록 돼 있어 위원 풀의 한계가 있다”라며 “비상근 위원 일부(3명)을 전문가 단체에서 추천받아 위촉할 것”이라고 밝혔다. 9명 가운데 6명은 가입자단체(상근 3명+비상근 3명)으로부터, 나머지 3명은 전문가 단체(비상근 3명)로부터 추천을 받겠다는 것이다.
전문가 단체가 추천하지만 친정부 인사 위주로 채워져 의결권 행사에 정부 입김이 커지는 것 아니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최근 KT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처럼 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내세워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는 게 자칫 관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기 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훈 수탁위 위원은 “삼성물산 사태 이후 연금 의결권 행사에 독립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따라 수탁위를 꾸렸지만 이후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라면서도 “전문가 중에 정부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만큼 전문성을 강조하며 위원을 위촉하게 되면 독립성이 위협받게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이 위원은 “수탁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아직 전문성에 힘 싣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복자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기존에 가입자 단체로만 추천받다 보니 전부 회계사·변호사로 기금 의결권 행사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에 금융·투자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라며 “전문가 단체에서 금융·투자 전문가 위주로 추천을 받을 거라 아무나 위촉한다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한국금융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 한국재무학회, 한국연금학회, 한국경영학회, 금융투자협회, 국민연금연구원 등을 추천 전문가 단체 예로 들었다.
“수탁자 책임 활동, 관치로 격하” 비판
최근 기금위 산하 3곳 전문위원회에 공통으로 활동하는 상근 위원에 검찰 출신 인사를 위촉한 걸 갖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306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기금개악을 시도하고 있다”라며 “수탁자 책임 활동을 관치로 격하하고, 기업범죄 전문 검사 출신을 기금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 및 주주권 행사의 투명성·공정성 향상을 위해 도입된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라며 “그러나 최근 KT 등 기업에서 주총을 앞두고 나타나는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취지와 다른 관치로의 격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요직을 검찰 출신이 차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발생한 삼성물산 합병 국정농단 사건의 유죄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논문을 게재해 기금의 독립성과 배치되는, 수탁위에 전혀 상반된 가치를 가진 인물을 배치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했다.
한편 이날 기금위는 2022년 연금기금 결산안도 의결했다. 순자산은 890조4000억원으로 전년도 말 대비 58조원이 감소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투자자산의 평가 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민연금기금이 -8%대의 저조한 수익률을 보인 것을 언급하며 “올해 2월 수익률은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운용 인력의 보수 수준을 시장 상황에 맞게 합리화하고 금융시장·운용사와의 원활한 정보 교류와 네트워크 구축 등 기금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 수익률을 높일 특단의 조치를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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