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 놀이터 된 스위스…머나먼 IPO 여정

권해영 입력 2023. 3. 7. 1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中 기업, 스위스 시장서 IPO 잇따라
美 사모펀드, 대중 투자도 둔화
민간투자 제한 행정명령 임박

중국 기업들이 상장 심사 장벽이 높은 미국, 영국을 피해 스위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미국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의 중국 기업 투자도 줄어드는 추세다. 미·중 간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면서 양국 간 자본이동과 투자 또한 빠르게 위축되는 양상이다.

中 기업, 스위스 증시에서 IPO 잇따라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스위스 증권거래소(SIX)에 따르면 중국 기업 9곳은 지난해 스위스 취리히 주식시장에 상장해 32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뉴욕에서 조달한 자금인 4억7000만 달러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올해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려는 중국 기업 역시 20곳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리튬 배터리 장비 제조사인 저장 항커 테크놀로지는 올해 스위스 증시에 처음 상장해 1억72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유럽이 중국 기업의 새로운 IPO 시장으로 부상한 가장 큰 배경으로는 미·중 갈등 고조가 꼽힌다. 중국 기업에 대한 회계 감독에 나서자 미국 증시 상장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간 정치·경제적 충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자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대한 직접 감사를 주장하며 회계감사보고서 제출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이 국가 안보상 이유로 반발하며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결국 중국 기업이 미 증시에서 상장 폐지 직전까지 내몰리면서 중 당국이 한발 물러섰지만, 이후 IPO 시장에서 미국 대신 스위스를 선택하는 중국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럽 중에서도 영국이 각광을 받았으나, 영국 정부가 미국처럼 중국 기업에 별도의 회계감사기준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중국 기업들은 다시 스위스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2019년 이후 중국 기업 5곳이 영국 시장에서 IPO를 통해 65억 달러를 조달했다. 올해는 석탄화학기업인 융타이와 IT 기업인 링이 아이테크가 영국 증시에 상장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앞서 영국 규제당국은 중국의 회계감사기준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국 기업들이 자국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에 상장할 경우 당국의 자본 통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점도 유럽행을 택하는 이유로 꼽힌다.

일각에선 스위스 증시가 중국 기업의 '놀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의 한 증권거래소 전문가는 "스위스는 중국 시장이 될 위험이 매우 크다"며 "만약 중국 기업들의 상장 계획이 모두 현실화될 경우 조달할 자금 규모는 지난해 유럽 전체 IPO 규모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美 사모펀드, 대중 투자도 둔화…민간투자 제한 행정명령 임박

앞으로 미국에서 유럽으로 유턴하는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간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데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군사·정부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 기업의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 발표까지 앞두고 있다. 미국이 민간의 대중 투자를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미국 사모펀드들은 이미 대중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2022년 미 사모펀드가 참여한 글로벌 투자 거래 가운데 중국 기업 인수 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0.3%로 집계됐다. 2015년 3.5%, 2018년 1.3%에 이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미 사모펀드가 인수에 참여한 중국 기업 관련 거래의 가치 또한 2015년 245억 달러에서 2018년 121억 달러, 2022년 35억 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가 2018년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드러낸 반중 기조를 조 바이든 정부가 이어받음으로써 중국에 대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발 빠른 투자자들은 발표가 임박한 미 행정명령에 대비해 대중 투자 비중을 더욱 적극적으로 줄이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은 아시아 펀드에 투자할 때 대중 투자 한도 비중을 이전보다 축소하도록 하는 새로운 투자 한도를 설정했다. KKR는 중국 기업 투자 시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이 아닌 금융 서비스 부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미 컨설팅업체 크럼튼 글로벌의 매니징 디렉터이자 전직 국방부 관료였던 H.K. 파크는 "일부 투자자들은 행정명령 발표 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중국 기업을 매각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테크산업에 대한 투자를 억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거의 완료함에 따라 세계 2위 경제 대국에 대한 베팅은 더욱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