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에 부담 안 주려던 盧…현대차에 직접 "물량 달라" 민원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22〉 50대에 만난 ‘인간 노무현’
나는 2006년 7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하다가 영화 얘기가 나왔다. 내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얘기했더니 노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주말에 대통령 관저에서 볼 수 있게 영화 CD를 구해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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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중에 고생하는 경호원 안 됐다”
지방 숙박 최대한 피하고 서울행
커피믹스 직접 타며 장관과 토론
내키지 않은 ‘성매매법’ 못 막아
」
“다른 사람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며칠 뒤 반응이 뜻밖이었다. 노 대통령은 “영화는 봤는데 영 이해가 안 되더라”고 했다. 한글 자막을 켤 줄 몰라서 그냥 영화를 봤다는 거였다. 관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밤중에 어떻게 자는 사람을 깨우느냐”고 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노 대통령의 생활 철학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경호원에게도 그랬다. 지방에 가면 현지에서 숙박하는 게 일정상 효율적일 때가 자주 있었다. 노 대통령은 반대했다. “서울에서 자고 내일 다시 옵시다.”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지방에 갔다가 밤에 나왔더니 경호원들이 너무 고생하는 게 보였습니다.” 그게 미안해서 숙박을 안 하겠다는 거였다. “경호원이 경호를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잘못하면 남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내 딴엔 이런 논리로 설득했지만 뜻을 바꾸지는 못했다.
예전에 공자는 50세를 하늘의 뜻을 깨닫는 ‘지천명’이라고 했다. 내 인생의 50대는 ‘인간 노무현’을 만나 극적으로 변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던 약 1년간은 거의 매일 가까운 자리에서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다. 노 대통령도 내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을 것이다. 그 중에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노 대통령은 장관이나 참모들에게도 책임을 미루지 않았다. 내가 정책실장을 맡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청와대에서 대기업 대표들과 상생협력 회의를 열었다. 현대자동차에선 정몽구 회장 대신 김동진 부회장이 참석했다. 회의 전에 노 대통령이 나에게 말했다. “회의 끝나고 김 부회장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남으라고 해주세요.”
“인기 없는 정책 책임 직접 지겠다”
대통령 집무실 옆에 작은 방이 있었다. 애연가였던 노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던 방이다. 누군가를 사적으로 만나서 얘기할 때도 그 방을 썼다. 거기서 김 부회장과 마주 앉은 노 대통령은 어떤 회사 이름을 꺼냈다. 둘 사이에선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이 회사 알고 있죠. 물량 배분 좀 해줄 수 있겠습니까.”(노무현) “알겠습니다.”(김동진) 선거 때 도움을 받았던 기업인의 민원을 대신 전달하는 것으로 보였다.
김 부회장이 가고 나서 노 대통령을 만났다. “그걸 왜 직접 하십니까. 저한테 말씀하시지요.” 노 대통령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쪽에 물량을 더 주면 빼앗긴 쪽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나중에 실장이 검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건 내가 직접 해야죠.”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비전 2030’ 정책과 관련, 증세를 건의하면서 시끄러워지면 책임지고 사퇴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한마디로 반대했다. “그걸 왜 장관이 책임집니까. 대통령이 책임져야죠.” 나중에 부담으로 돌아오더라도 대통령 스스로 최종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청와대 본관 국무회의가 열렸던 방 앞에는 넓은 홀이 있었다. 그곳에는 일회용 커피믹스와 커피잔을 쌓아뒀다. 노 대통령은 회의 전이나 중간에 커피 타임을 갖는 걸 좋아했다. 직접 커피믹스를 타 먹으면서 회의 참석자들과 편하게 대화했다. 장관들로선 공식 보고 일정을 잡지 않아도 대통령과 뭔가를 의논할 기회였다. 주변엔 경호원도 없고 대화 내용을 녹음하지도 않았다. 혹시 개인 신상 얘기가 나오면 나는 눈치를 봐서 슬쩍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모든 일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 스타일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장관들에게 자율권을 줬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의 뜻과 다르게 정책이 추진되는 일도 있었다. 성매매방지특별법이 그런 경우다. 여성단체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고 지은희 여성부 장관이 입법에 앞장섰다.
“성매매 자유화, 세금 부과 어때요”
노 대통령은 속으로 답답해했다. 그런데도 입법을 막지 못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입법에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차분하고 솔직한 토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슈였다. 잘못 말을 꺼냈다가는 엄격한 도덕주의 분위기에서 맹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
그때 나는 기획예산처에 있었다. 노 대통령에게 다른 일로 보고하는 자리에서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돈 많고 사회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연애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는 대책이 없습니다.” 나는 이런 식의 사회적 차별을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나는 19세기 프랑스 화가인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사례도 들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장애인이 된 그는 파리의 성매매 집결지를 자주 드나들며 성매매 여성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외국을 보면 성매매를 양성화해 국가가 관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노 대통령은 난감해하면서도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노혜경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성매매특별법이 논란이 됐을 때 노 대통령이 사석에서 “성매매를 완전 자유화하고 사업자등록증을 주고 세금만 제대로 내게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오”라고 물었다는 회고를 남겼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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