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증후군’을 아시나요… 원인모를 통증·혈뇨땐 의심

민태원 2023. 3. 6.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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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왼쪽 콩팥 정맥이 대동맥과 장동맥 사이에 끼여 압력 오르면서 혈뇨·옆구리 통증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생활도구의 원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이 있다. 이른바 ‘호두까기 증후군(nutcracker syndrome)’이다. 호두까기는 호두를 넣고 손잡이를 눌러 깨뜨려서 알맹이만 꺼내도록 만든 연장이다. 이와 비슷하게 인체 내 혈관이나 조직이 주변의 다른 혈관이나 인대 등에 눌려서 통증, 혈뇨를 유발하는 현상을 호두까기 증후군이라 한다. 환자들은 물론 의사들에게도 생소해 진단이 쉽지 않다.

왼쪽 콩팥 정맥, 두 동맥에 눌려

대표적으로 왼쪽 콩팥 정맥이 두 동맥(복부 대동맥과 상장간막동맥) 사이에 끼여 압력이 올라가면서 콩팥 속 실핏줄이 터져 혈뇨와 옆구리 통증을 유발한다. 왼쪽 콩팥 정맥은 콩팥에서 걸러진 혈액을 대정맥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별 문제 없지만 간혹 콩팥 정맥이 대동맥과 장동맥에 눌려 혈액이 잘 흐르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콩팥에서 피가 잘 빠져 나가지 못해 콩팥이 부어오르고 그로 인해 단백뇨, 피 섞인 소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여성은 골반통, 배뇨통을 호소하거나 남성의 경우 외음부의 혈관이 굵어지고 튀어나오는 정맥류와 연관되기도 한다.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정성진 신장내과 교수는 6일 “정상적인 해부구조를 보면 왼쪽 콩팥 정맥은 두 동맥 사이로 지나가게 돼 있다. 그런데 상장간막동맥이 대동맥에서 뻗어져 나오는 위치의 변화, 왼쪽 콩팥이 후방으로 처지는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너무 끼이면서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영상검사를 해 보면 10.9~72% 환자들이 두 동맥 사이에서 적어도 50%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젊고 마른 사람에서 이런 구조적 문제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마른 체형인 경우 두 동맥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내장지방이 적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남성 보다 여성에서 더 흔하다. 정 교수는 “환자 분포를 보면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에 주로 발견되고 여성은 40·50대에서 좀 더 진단되는 ‘두 봉우리 형태’를 띤다”면서 “특히 10대의 경우 학교건강검진에서 혈뇨 소견이 나와 의뢰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혈뇨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청소년에서 발견되면 콩팥 호두까기병을 염두에 두고 살펴본다”고 했다. 그는 “다만 많지는 않고 드물게 보는 편”이라고 부연했다.

혈뇨는 없을 수도 있고 간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정 교수는 “콩팥 정맥은 살짝 끼었다가 빠졌다가 하는데, 눌리는 정도가 심할 때 혈뇨가 유발된다. 또 꼿꼿하게 서 있을 때 심하게 끼이고 기대있거나 굽히는 자세에서 완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단백뇨도 일정하게 나오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이고 난 후 많이 나오거나 하면 콩팥 호두까기병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은 성장 과정에 콩팥 정맥의 압박 정도가 달라지면서 75% 환자에서 혈뇨가 저절로 사라지기도 해 최소 2년간은 지켜보는 게 권고된다. 다만 혈뇨가 심하거나 지속될 경우 빈혈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수술 치료를 받아야 한다.

‘호두까기 복통’ 명칭 제안 나와

최근 새로운 영역에서 호두까기 증후군 관련 제안이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풍렬 교수팀이 기존 ‘정중궁인대증후군’ 대신 ‘호두까기 복통’으로 칭하자는 내용의 연구논문을 국제 학술지를 통해 발표했다.


정중궁인대증후군은 복부 위쪽의 정중궁인대(횡경막을 통과하는 대동맥을 단단히 지지하는 구조물)가 복강 동맥을 아치 모양으로 가로지르면서 신경절을 누르는 탓에 통증이 생기는 병이다.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정중궁인대가 아래로 밀려 내려오면서 복강 동맥이 대동맥과 정중궁인대 사이에 끼이면서 생기는 현상이다(그림 참조). 이 교수는 “정중궁인대와 복강 동맥 사이에 위치한 신경절이 호두까기에 눌리는 모양으로 압박이 가해지면서 복통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는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신경통이어서 복통의 흔한 원인인 소화나 배변과는 상관없다. 호흡과 자세 변화에 따라 통증의 강도가 달라진다. 담낭·담관염, 화농성 위염, 췌장염, 복막염 등도 복통을 유발하지만 호두까기 복통과는 양상이 다르므로 증상의 특징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연구진은 “복부에 주요 장기가 몰려있는 탓에 다른 병과 헷갈리기 쉬운데다, 병 자체가 흔한 것도 아니어서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원인불명 복통으로 병원 이곳저곳 헤매는 환자들이 줄어들기 바라는 마음에서 보다 알기 쉽게 병명을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2016~2018년 원인 모를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대상 연구를 통해 감별진단 기준을 정립했다. 이 교수는 “원인 질환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복통이 지속되거나 식이·배변과 관계없이 통증이 발생하는 경우 호두까기 복통을 의심해야 한다. 환자도 알아야 하지만 그 전에 의사들이 감별진단법을 인지하고 꼭 확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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