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안가리는' 美, 韓 반도체 종속 공포[기자수첩-산업IT]

조인영 2023. 3. 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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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매우 거칠고 억세다.

막대한 보조금을 빌미로 소재부터 장비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미국으로 흡수하겠다는 목표를 노골화한 것이다.

또 미국이 원하면 반도체 생산·연구시설까지 공개해야 하는 기술 안보 리스크마저 짊어지게 됐다.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투자를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도 3월 중 공개하겠다고 해 반도체 규제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득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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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69조 반도체 보조금 빌미로 생태계 흡수 전략 노골화
삼성·SK, 이중과세·기술 보안 리스크로 '선택 기로'
'예외 조치', '유예 기간 연장'에 민·관 총력적으로 나서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AP/뉴시스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매우 거칠고 억세다. 막대한 보조금을 빌미로 소재부터 장비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미국으로 흡수하겠다는 목표를 노골화한 것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총 527억 달러(약 69조원) 상당의 보조금 정책을 발표했다. 반도체 생산에 390억 달러, 연구개발(R&D)에 132억 달러다.


대신 단서 조항을 주렁주렁 달았다. 보조금을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원) 이상 받는 기업은 초과 이익을 달성하면 미 정부에 일정 부분을 공유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지원 보조금에서 최대 75%까지 환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반도체 생산 제품과 생산량, 주요 고객과 더불어 생산 장비와 원료명도 기재할 것도 요구했다. 이 정도면 기업의 영업기밀에 해당해, 미국에 투자중이거나 계획중인 삼성과 SK로서는 상당히 당혹스럽다. 미 상무부는 군사용 반도체 개발과 공급에 협력할 기업을 우대하겠다고도 밝혀 사실상 '반도체판 노예계약'이라는 속셈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보조금을 조건으로 법인세 뿐 아니라 각종 명목의 이익까지 뜯기는 이중과세 부담을 안게 됐다. 또 미국이 원하면 반도체 생산·연구시설까지 공개해야 하는 기술 안보 리스크마저 짊어지게 됐다.


이 정도라면 보조금을 수령의 이득 보다는 손실이 커 족쇄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투자를 금지하는 '가드레일' 조항도 3월 중 공개하겠다고 해 반도체 규제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득하기까지 하다.


한국 반도체기업들은 이같은 보조금 정책에 유불리를 따져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미 당국과 협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체들에게 얼마나 힘이 될지 미지수다.


"미국의 경제와 안보"(미 상무부 발표) 기치 아래 삼성·SK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무산시키고 반도체 생태계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겠다는 두 가지 목표를 노골화한 마당에 이 같은 '물불 가리지 않는' 규제는 더 심화될 것이 뻔하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 반도체가 미국의 입맛대로 놀아나는 종속 기업으로 전락할까 두려울 정도다.


반도체 기술 우위를 위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험로를 걷고 있다. 미국·유럽 일본·중국에서는 정부 주도로 많게는 수 조원의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자체 역량을 확보하는 것만이 미래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이 타기업 장부를 마음대로 열람하고, 보안 시설도 개방시키겠다는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다면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제도를 내놓을 수 있다. 수십 년간 어렵게 쌓아올린 지적재산과 영업비밀을 글로벌 패권 다툼 속에 한 순간에 빼앗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생사 기로에 놓인 한국 반도체를 원론적이고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이미 삼성이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도 패키징 공장 투자를 추진하는 등 막대한 투자가 진행중임을 미국 측에 상기시키고, 보조금 조건에서 한국이 예외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외교력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중국 수출 제한에서도 최대한 유예 기간 연장을 끌어낼 수 있도록 민·관이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한국 반도체 위기를 자초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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