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타임지 극찬 ‘정주영 공법’ 서산 간척지에 기념관 추진
1995년 8월 충남 서산과 홍성·태안을 연결하는 방조제 위로 자동차가 질주했다. 1~2시간을 가야 도착하던 길이 절반으로 줄었다. 천수만 AB지구 간척지 얘기다. AB지구 간척공사는 규모에 걸맞게 숱한 일화를 남긴 사업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게 ‘정주영 공법’이다.
바다를 막아 방조제를 쌓고 농경지를 만드는 토목공사는 고(故) 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당시 7.7㎞에 달하는 방조제를 쌓던 중 공사가 난관에 부딪혔다. 9m에 달하는 조수간만의 차, 초당 8m의 거센 조류 때문에 진척되지 않았다. 승용차 크기의 커다란 돌을 퍼부어도 물살을 버텨내지 못했다. 고심하던 정 회장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법을 생각해냈다. 고철로 쓰기 위해 들여온 대형 유조선(23만t)을 방조제 구간에 가라앉히는 공법이었다.
이 공법은 당시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와 ‘타임’에도 소개됐다. 영국 템즈강 하류 방조제 공사를 맡았던 세계적인 철 구조물 회사도 유조선 공법을 자문했다.
이 공법으로 방조제 공사는 무사히 끝났다. 방조제가 준공되면서 안쪽에는 1만5409㏊의 매립지가 생겼다. 농지 면적만 1만121㏊에 달했다. AB지구가 ‘충남 서해안 지도를 바꾼 대공사’로 평가받는 이유다.
정 회장은 1998년 AB지구 간척지(현대그룹 서산농장)에서 기른 소 1001마리를 몰고 방북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소를 팔아서 갖고 있던 돈(70원)을 몰래 훔쳐 상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은 생전 서산농장을 찾을 때마다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내가 마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는 성지 같은 곳”이라고 회고했다고 한다.
이런 서산 간척지에 정주영 회장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 간척지 역사를 청년 세대에게 알리고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취지다. 서산시는 이런 뜻을 현대그룹에도 전달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최근 열린 주민 간담회에서 “(서산) 간척지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라며 “정주영 기념관을 만들어 최고의 관광 명소로 키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서산시는 AB지구 간척지에 정주영 회장 기념관을 비롯해 복합문화시설과 가족 여가 공간 등을 조성할 방침이다. 앞서 이완섭 시장은 지난해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뉴욕에 가면 소 동상이 있는데 전 세계인이 가서 (소를) 만지고 사진을 찍는다”며 “밀짚모자를 쓴 정주영 회장이 소고삐를 잡고 북한 쪽으로 걸어가는 동상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12월 충남도와 서산시·현대건설은 ‘청년 농업인 육성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AB지구에 330만㎡ 규모 스마트팜 영농단지를 조성키로 합의했다. 영농단지는 충남도가 소유한 땅과 현대건설 소유 농지, 농어촌공사 농지은행 비축 농지 등을 활용하게 된다. 스마트팜은 전통 경작 방식의 농·축·수산업에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사물인터넷·지리정보시스템 등 IT 첨단기술을 접목한 시스템을 말한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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