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2인자 지재섭 제명... 포스트이만희 숙청일까?

김동규 입력 2023. 2. 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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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긴급 기고]
"신천지 배신하고 저주"
전남지파장 전격 제명
건강이상설 등 내부 술렁

신천지의 2인자이자 이만희 교주의 유력 후계자였던 지재섭 지파장이 제명 당했다. 신천지 내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나는 20대 초반 신천지를 경험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20년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는 책을 썼다. 신천지에서 알게 된 정보들을 정리해 블로그를 통해 알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주일 동안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내가 3년 전에 쓴 글의 등장인물은 지재섭. 신천지의 광주·전남지부에 해당하는 베드로지파에서 30년 넘게 지파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지재섭 지파장은 신천지 설립 이전부터 이만희 교주와 함께 했다. 둘은 지금은 해산된 유재열의 장막성전이라는 이름의 사이비 종교 신도였다. 신천지를 만든 이 후 지재섭은 호남 지역을 담당했다.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지난 2019년 당시 신천지 국내신도는 20만7504명이었는데, 호남지역 신도가 5만1574명으로 4분의1에 이른다. 광주전남 지역의 베드로지파 신도 수는 3만9261명이었고, 도마지파는 1만2313명이었다. 도마지파는 호남 지역의 신도가 너무 많아져 전북 지역을 분리해 독립시킨 지부다.

지재섭 지파장은 자신의 사돈이었던 장방식을 충청권에 파견해 맛디아지파를 창설토록 했다. 장방식은 광주 서구 농성동 센터에서 신천지 교리 교육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충청권으로 이동해 창설한 맛디아지파는 지난 2019년 당시 2만3761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베드로 도마 맛디아 3개 지파의 신도 수는 7만5335명. 신천지 전체의 3분의1에 이르는 거대한 세력이었다.

지재섭이 만든 베드로지파는 신천지 포교의 원형을 만들었다. 신천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포교하는 모략포교를 비롯한 포교 수법 대부분을 베드로지파에서 개발해 전국으로 퍼트렸다. 지재섭은 사실상 신천지의 근간을 형성한 인물인 셈이다. 이만희 교주는 요한계시록 제6장 ‘밀 한 되 보리 석 되’ 비유를 인용해 지재섭 지파장이 바로 보리 석 되라며 조직 내 2인자로 공인하기도 했다. 이 덕분에 지재섭은 '포스트 이만희'로 불려 왔다.

내가 블로그에 작성해둔 글은 지재섭이 만든 베드로지파가 호남권을 중심으로 지금의 신천지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2023년 2월에 와서 수천명이 지재섭을 검색하고 이 글을 찾아왔을까. 23일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신천지가 지재섭을 제명한 것이다.

신천지 내부의 소식을 전한 이들에 따르면 22일 신천지 측은 지 지파장을 제명했다고 공표했다. 신천지는 ‘제명통지서’를 공개하면서 “(지 지파장이)미혹을 받아 신천지를 배신하고 저주함으로 직책을 해임하였고 신천지 소속에서 제명한다”고 알렸다. 또 “제명 및 근신된 자에게 대화나 만남을 하는 자도 동일한 벌을 받게 된다”며 신도들이 일체 지 지파장을 접촉하지 않도록 경고했다. 다른 지파장들이 평균 2년 주기로 교체될 때,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전직 지파장의 초라한 퇴장이었다.

열흘 전인 지난 13일에는 ‘근신 통지서’를 공개하면서 “(지 지파장을)영육 건강할 때까지 근신을 명한다”고 공표했다. 당시 이유 역시 “신천지를 악평 악담하기 때문이다. 다른 신이 지재섭을 움직이는 것 같다”면서 “가족 외에 지재섭과 대화하거나 만남을 하는 자는 동일한 벌을 받게 된다”고 했다.

이 사건은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의 남편이었던 장성택을, 김정은이 숙청한 사건과 무척이나 유사하다. 지재섭은 늘 신천지의 차기 지도자로 언급돼 왔다. 신천지 측이 선제적으로 지재섭을 제명한 것은 '포스트 이만희' 시대와도 무관할 수 없다.

문득 이만희 교주의 마지막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흔을 넘긴 이만희는 언제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조직의 실권자를 정리하는 일은 꽤나 중요한 징후라 할 것이다.

베드로지파 관계자들에게 연락해 상황을 파악했다. 부모 때문에 신천지를 다니는 등 믿음이 깊지 않은 신도들에게 작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지 지파장이 치매를 앓고 있다거나 하는 설도 있었으나 확인은 어려웠다. 그들 역시 들은 것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한때 조직의 실권자였던 지 지파장은 이대로 순순히 신천지를 떠날까?

신천지 베드로지성전은 절반을 짓는 데에만 약 200억 원이 들었다. 베드로지파가 보유한 자산은 가히 어마어마하다. 지재섭씨는 특권을 누려왔다. 냉정하게 말해, 신천지 베드로지파장직은 광주에서 국회의원을 3번 하는 것보다 좋은 자리였다. 광주에서만 2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단순한 신도를 넘어 광적 지지자로서 상부의 지령을 추종했다. 2019년 당시 3만9000명이 베드로지파 소속이었음을 생각해 보자.

지 지파장의 담양 고서저택에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고서봉사’ 공지가 나가면 청년들이 지씨의 자택에 가서 나무와 정원을 관리했다. 부녀부 신도들은 청소를 하고 밥을 지었다. 한 청년은 힘겨운 노동을 마친 후, “여기서 일하면 지파장님이 밥을 고봉으로 주신다”며 감사해 했다.

지재섭은 순순히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올까. 거대한 자산과 특권을 포기하기가 쉬운 일인가? 한때 신천지의 또 다른 2인자였던 김남희의 폭로전이 떠오른다. 결국 이번 제명사태는 내부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남아서 싸우거나, 기존 구성원들을 데리고 나가 새로운 조직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지재섭이 떠난 신천지 베드로지파의 신임 지파장은 이정우 강사다. 그는 신천지 안에서도 유능한 강사로 꼽혀왔다. 본부는 선제적으로 지재섭 일파에 대한 숙청을 시작했다. 상당한 사전 작업이 있었을 것이고, 이는 이만희 사후 불거질 후계 문제를 정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물론 이전부터 이어져온 흐름이지만, 호남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신천지의 실권이 확실하게 본부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 오묘한 기분이 든다. 2023년에는 부디, 수많은 청춘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신천지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으면 좋겠다. 이제 그만하고,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직 늦지 않았다.

김동규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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