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핵실험장' 피폭 우려…통일부, 전수조사 예고
文 시절 검사…"대조군·교란변수 정보 부족"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주민 수십만명에게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통일부가 피폭이 우려되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을 대상으로 연내 전수조사 실시를 예고했다.
이효정 통일부 부대변인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 우려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이 같은 방침을 공개했다.
통일부는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탈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및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 881명을 대상으로 잡았다.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방사선 피폭 검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으로, 이르면 올 상반기 중 검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로선 기본적인 방향과 방침만 세운 상태지만, 상반기 내 조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며 "검사는 전문기관에 의뢰할 계획이고, 추진 과정에서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할 기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 출신 탈북민을 대상으로 피폭 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핵실험에 따른 인과관계가 명확히 특정되거나 별도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방사능 피폭 사례는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당시 조사는 대조군이 없었던 데다 표본 수가 40명으로 한정적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와 함께 흡연, 중금속 등 교란변수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 또한 부족했다는 이유로 조사 결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이효정 부대변인은 "보다 의미 있는 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 관련 지역 출신 대상자들의 동의를 얻어 올해부터 피폭 전수조사를 추진해나갈 예정"이라며 "탈북민의 방사능 영향 및 건강상태 확인을 위해 일반 건강검진과 병행해 실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북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지난 21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 제하의 특별보고서를 통해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주민 수십만명에게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물'을 매개체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우려에 대해 종합적 개요가 제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2017년 9월 6차 핵실험 땐 수차례의 자연 지진과 지반이 50㎝가량 가라앉는 지표면 변형까지 확인됐는데, 당시 전문가 참고인으로 국회에 출석한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핵실험 뒤 계속된 지진들은 지반 균열과 방사능 누출을 시사한다"며 "무서운 건 지하수다. 아웃 오브 컨트롤(통제불능) 상태"라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아울러 보고서엔 핵실험장 인근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의 밀수·유통으로 인접 국가인 한국과 중국, 일본까지 피폭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담겼다. 송이버섯이 가장 대표적인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받아 온 송이버섯 2t을 방사능 검사 없이 이산가족 고령자 4000여 명에게 인당 500g씩 선물로 뿌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2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구재단 '개혁과 기업가정신·지속가능성을 위한 포럼(FORES)'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스웨덴 정부 관계자와 각국 외교관·연구자 등에게 이번 특별보고서를 소개할 예정이다. 케르스틴 룬드그렌 스웨덴 의회 부의장이 사회를 맡고,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와 신희석 법률분석관이 발표를 진행한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그간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안보 문제로만 여겨졌는데 이번 보고서를 통해 핵실험이 주민들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사람들의 생명권까지 위협하는 '인권 문제'라는 점이 확인되길 바란다"며 "정부는 피폭 증세를 보이는 탈북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에 즉각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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