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⑪] 서두르다 놓칠라…속도보다는 ‘우보천리’ 지혜를

장정욱 2023. 2.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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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노사법치 중심 노동 개혁
연일 강도 높은 개혁안 선보여
균형감 잃으면 사회갈등 키워
속도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합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해 12월 6일 경기도 의왕시 의왕ICD 앞에서 윤석열 정부 노동 개혁 관련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윤석열 정부의 ‘법치주의에 기반한 노동 개혁’이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첫 단추를 끼우고 있다. 윤 대통령 스스로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법치”라며 “노사법치는 노동조합의 민주성, 자주성을 보호하고 조합원 알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노동 개혁에 속도를 높이면서 연일 강도 높은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노조 회계 장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정부 지원도 끊기로 했다.


노조 회계 문제와 함께 2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는 ‘건설 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 대책’도 발표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강성 기득권 노조가 금품요구, 채용 강요, 공사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며 “폭력과 불법을 보고서도 이를 방치한다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불법행위를 집중 점검·단속하고, 불법행위가 드러나는 경우에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도 높은 노조 개혁안에 찬반 의견은 분분하다. 노동계와 사용자 측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국민 여론 자체는 나쁘지 않은 듯하다. 정치 커뮤니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국가 기관이 노조 회계 들여다봐야 할까요?’라는 주제로 314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 절반을 넘은 53%가 국가 기관의 노조 회계 감사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 응답자는 30.7%, ‘중립’은 16.3%에 그쳤다.


반면 정부가 지나치게 노조를 압박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 조처가 돈줄을 이용해 ‘윤석열 표’ 노동 개혁에 반대하는 집단(노조 등)을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조 활동 핵심 자원인 돈을 통제해 집회나 파업을 묶으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며 “정부가 노동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조를 가장 큰 저항 세력으로 보고 손 보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분석했다.


노동 개혁에 관한 찬반 시각은 앞으로 정부가 내놓을 사안마다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나 일자리 불확실성에 대한 선제 대응 등 남은 과제들 역시 잡음 없이 손질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3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일본·독일 노동 개혁은 아직도 진행중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정부가 균형감을 잘 유지하고 속도 조절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동 문제는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주제다. 그만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면 최종적으로 바뀐 제도가 뿌리내리기 힘들다. 정책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사회 갈등은 계속될 뿐이다.


노동 개혁 선배 국가들을 봐도 그렇다. 그들은 단숨에 목표에 이르려 하지 않았다. ‘일하는 방식 개혁’이란 이름의 일본 노동 개혁은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 만드는 데만 2년 이상 걸렸다. 관련 법안들은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독일의 ‘하르츠 개혁’도 마찬가지다. 2002년 제도 도입을 시작한 이래 아직도 개혁은 진행 중이다. 장기 실업자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하르츠 개혁은 비교적 성공한 노동 개혁 사례로 손꼽히면서도 노동 질이 하락한 점은 여전히 고쳐야 할 과제다.


현 정부가 보여주는 노동 정책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균형감이다.


정부는 현재 노동 개혁 방향이 충분히 균형 잡혔다고 판단한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현 정부 노동 개혁안 뼈대가 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보고서에 대해 “노동의 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개혁과제들이 균형감 있게 제안됐다”고 평가했다.


주 최대 80.5시간까지 근무하는 안에 대해서도 정부는 11시간 의무 휴식시간 부여 등 과다 근로를 막는 방안을 충분히 포함한 보고서라고 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노동 개악’이라 일축했다. 노동계에서는 학자 중심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구성 자체를 비판했다. 실제 장시간 노동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노동 개혁안 마련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22일 고용부가 마련한 노동계 원로 간담회 자리에서 이병균 전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일하는 방식과 문화 등을 고려해 노사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면서도 “현재 진행되는 노동 개혁 관련 회의체가 전문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고 노사 상생을 위해 사회적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성현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법치가 있지만 민주사회는 자치도 중요한 만큼 정부가 사회적 대회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은 사회와 경제 발전의 근간이다. 이런 이유로 사회학자들은 ‘노동은 존엄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만큼 중요한 도전이고 정밀하게 다뤄야 할 과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혁의 속도에만 몰입하지 않고 방향과 균형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과속으로 내달린 노동 개혁은 사회를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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