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멸종위기종 새 먹었나…'마라도 고양이 추방사건' 진실 [팩트체크]
한국 최남단의 작은 섬 마라도가 시끌시끌하다. 이 섬에 사는 1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돼 한꺼번에 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 등은 지난 17일 2차 협의체 회의를 열고 멸종위기종 뿔쇠오리를 비롯한 200여 종의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를 일괄 반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동물 보호 단체로 구성된 ‘철새와 고양이 보호 대책 촉구 전국행동’(이하 전국행동)은 “반출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마라도 주민 A씨는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싫어하는데도 (이번 사태로)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했다”며 “많은 주민이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B씨는 “멸종위기종을 보호해야 한다니 이해는 하는데, 고양이가 나가면 쥐가 다시 들끓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고양이는 정말 철새들을 위협하고 섬의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주범인 걸까? 중앙일보는 국내외 논문과 생태 전문가, 주민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마라도 고양이를 둘러싼 주요 논쟁 사항에 대해 짚어봤다.
①고양이가 마라도 생태계를 파괴한다?
해외에서도 고양이가 섬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존재한다. 2011년 국제 학술지 글로벌 체인지 바이올로지(Global Change Biology)에 발표된 ‘외래 고양이가 섬 멸종위기종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당시를 기준으로 최소 전 세계 120개의 섬에서 고양이가 섬 고유종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모습이 확인됐다.
특히, 섬을 잠시 쉬어 가는 중간 기착지로 삼는 철새들은 고양이의 위협에 가장 취약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류학자인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마라도는 철새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래하는 곳으로 (오랜 비행에) 너무 지쳐서 나무나 돌 위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이 만져도 가만히 있는 걸 볼 수 있다”며 “(고양이 등 포식자의) 위협에 훨씬 더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②고양이를 쫓아내면 생태계 회복될까
아직 쥐로 인한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자료는 없으나 문화재청은 방역 등의 방법으로 마라도 내 쥐 번식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마라도의 한 식당 주인은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매우 큰 쥐들이 사람 사는 곳에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고양이 덕분에 눈에 띄지 않는다”며 “방역으로 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고양이를 내쫓은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성화를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고양이와 철새들이 섬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길고양이 생존 기간은 짧고, 마라도 고양이 대부분이 중성화돼 있어 개체 수가 줄고 있다”며 “이미 주민과 공존하고 있는 고양이들을 일괄 반출할 필요가 있을까. 전문가들도 고양이를 일정 수(40마리가량)를 기준으로 개체 수만 조절해도 된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③섬에서 방출된 고양이들은 어떻게 될까
현재까지 반출 고양이에 대해 수립된 계획은 제주대 수의학과 동물병원 건강검진 후 관할 동물보호소 이관이다. 동물보호소는 각각 구조 동물에 대한 입양 공고를 낸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진행한다. 조 대표는 “통상 20%가량의 동물이 안락사 된다”며 “한꺼번에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동물보호소로 가면, 이들이 모두 입양될 수 있겠나, 대안없이 반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마라도 주민 C씨는 “반출 고양이의 안전에 대해 2~3년간 추적 관찰 등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전제하에 문화재청의 고양이 반출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아직 추적 관찰에 대해서는 사업 예산이 확보되지 않았다”면서도 “반출 고양이의 안전을 보장한 것은 사실이며 이를 위한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정은혜·홍지유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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