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미래]⑦베트남 영화 만들고 호치민·하노이 밖으로
2·3선 도시 방점 찍고 로컬영화 수요 확대
"맞춤형 공략 구체화…CJ ENM과 공조도"
CJ CGV는 일곱 나라에서 극장 591곳(스크린 4207개)을 운영한다. 상당수는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린다. OTT 부상, 가격 인상 등으로 회복 속도가 더디다. 지난해도 적자였다. 다만 영업손실은 전년보다 1646억 원 줄었다. 동남아시아에서의 선전 덕이다. 특히 베트남에서 매출 1499억 원, 영업이익 102억 원으로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국내의 4분의 1 규모지만 매서운 성장세를 보인다.
올해도 풍년이 들 조짐이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냐 바 누(Nha Ba Nu·누의 가족)'가 베트남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썼다. 약 4300억 동을 벌어들이며 올해 세계 영화 흥행 순위 10위권에 자리했다. CJ의 현지법인 CJHK엔터테인먼트가 기획·투자·제작한 영화다. CGV 베트남은 긴밀한 협력으로 붐을 함께 조성했다. 올해 2·3선 도시에 방점을 찍고 로컬영화 수요를 확대할 계획이다. 고재수 CGV 베트남 법인장은 "호치민, 하노이, 다낭, 하이퐁 등 대도시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규모를 키울 방침"이라며 "2·3선 도시의 전체 시장 비중을 35%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 후유증을 비교적 빨리 털어냈다. 비결이 궁금하다.
"영업 중단에도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며 고객과 소통한 점이 주효했다. 현장 프로모션보다 자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많이 활용했다. 영화와 크게 관련이 없더라도 현지인들이 좋아할 만한 라이프 스타일 콘셉트의 콘텐츠를 다수 제작해 송출했다. 현재 페이스북 구독자 수가 420만 명이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각각 67만 명과 20만 명이고. 현지 영화관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전체로 봐도 가장 많다."
-베트남은 호치민, 하노이 등 1선 도시와 2·3선 도시의 환경이 판이하다. 차별화된 공략이 필요해 보이는데.
"소비 행태부터 생활 습관까지 전부 다르다. 빠른 안착을 위해 영화 주간 책자 등을 제작한다. 시장, 학교 등에 집중적으로 비치한다. 자막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더빙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생활 패턴 등을 고려해 상영 시간을 조율하며 영화관람 문화를 만들어간다. 이미 고객을 유인할 환경은 충분히 마련됐다. 건물을 독차지하는 '스탠드 얼론(stand alone)' 형태가 아니다. 인파가 몰리는 글로벌·로컬 브랜드몰 등 프라임 로케이션에 집중돼 있다. 추가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전념해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고수익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베트남은 지역마다 선호하는 영화가 다르다. 맞춤형 프로그래밍이 고른 성장의 관건일 듯하다.
"그렇다. 지난해 하노이와 호치민의 현지 영화 시장 점유율이 65% 이상이었다. 대도시이기도 하지만 수요에 맞게 영화를 공급한 점이 수익 극대화로 이어졌다. 예컨대 호치민에서는 로컬영화, 하노이에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좋아한다. 한국 영화는 지역 구분 없이 좋은 성적을 내고. 2·3선 도시에서도 맞춤형 공략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K-팝 그룹이나 뮤지컬 공연 실황이 큰 인기를 끈다. 베트남 사정은 어떤가.
"법적으로 영화가 아닌 콘텐츠의 상영·활동이 제한돼 있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개정, 완화 등을 요청하고 있다. 문제가 해결된다면 폭넓은 경험 제공은 물론 현지 문화 콘텐츠 시장을 확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난해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가 '육사오'다. 어떤 점이 통했다고 생각하나.
"베트남 사람들은 가족 간 사랑과 정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한다. 멜로, 코미디 등 장르와 어우러져 쉽게 전달되면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육사오'도 비슷한 맥락이다. 형제·연인·남북군인 간 정이 코미디와 맞물려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니까. 흥행에는 세심한 번역도 한몫했다. 현지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유행어를 반영해 긍정적 바이럴을 일으켰다. 그 덕에 한국(197만 명)보다 많은 225만 명을 동원했다. 한국에서 7257명을 모으는 데 그친 '2037'도 33만 명을 모으며 선전했다. 절망적인 환경에서 엄마와의 행복을 꿈꾸는 이야기가 관람객 가슴에 가닿았다."
-관람객 성향 파악을 토대로 직접 로컬영화도 제작하는데.
"베트남은 문화산업을 선도하는 대기업이 부재하다. 영화 제작 환경도 아직 열악하고. 연간 개봉 편수가 수년째 마흔 편 안팎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직접적 참여가 필요할 정도로 성장이 요원하다. CJ ENM과 기획·제작·투자·배급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협업 중이다. 플랫폼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에서 베트남을 넘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더 긴밀하게 공조할 필요가 있다."
-관람객 연령대 확장 차원에서도 로컬영화의 성장은 매우 중요하다. 중년과 노년층 관람객을 사로잡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예컨대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021년에 로컬영화 '아빠 미안해요(Bo Gia)'는 관람객 490만 명을 동원했다. 부성애를 다룬 이야기에 중년과 노년층이 대거 영화관을 찾았다. 기존 베트남 역대 최대 흥행작의 두 배가 넘는 인파였다. 비슷한 성격의 영화들이 계속 나와준다면 관람층의 연령대가 고르게 분산될 수 있다."
-관련 IP 발굴에 많은 공을 들일 듯한데.
"물론이다. 단순히 시나리오를 공모하기보다 창작자 육성에 중점을 둔다. CJ 문화재단과 함께 단편영화 제작 지원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예비 영화인들의 성장과 다양성 확보야말로 새로운 시장 확장의 동력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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