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태평양은 北 사격장"…김주애 주목받자 수위 높였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0일 이틀 연속 담화를 내고 전날 B-1B 전략폭격기를 앞세워 연합 공중훈련을 진행한 한·미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여정은 특히 태평양을 자신들의 '사격장'에 비유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정상각 발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김여정은 또 북한의 미사일 기술에 대해 "아직 수준이 낮다"고 평가한 남측을 "바보들"이라고 지칭하며 일일이 반박했다.
사실상 "미국 본토를 향해 언제든 ICBM을 쏠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결국 미국에 대한 협박의 수위를 높이기 위한 의도란 해석이 나온다.
ICBM 정상각 발사 암시하며 美 협박
김여정은 이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태평양을 우리의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빈도수는 미군의 행동 성격에 달려있다"며 "정세를 격화시키는 특등 광신자들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언한다"고 말했다.
이는 ICBM의 정상각 발사를 암시하는 것으로 북한의 ICBM이 미국 공격용임을 강조하며 미국을 재차 협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여정은 지난해 12월 담화에서도 자신들의 ICBM 기술과 관련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하면서 수직에 가까운 '고각 발사'를 반복하고 있다. 정상각으로 괌이나 하와이, 또는 미국 본토를 겨냥해 ICBM을 발사하는 것이 초래할 결과를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정상각 발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자신의 도발을 무력화하고 있는 한·미 공조의 강화 기류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최근 조선반도(한반도) 지역에서의 미군의 전략적 타격 수단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며 "직·간접적인 그 어떤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상응한 대응에 나설 것임을 이 기회에 다시금 기정사실로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김여정의 담화 직전엔 동해 상으로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초대형 방사포 2발을 쏘며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윤석열 정부의 '팃 포 탯(tit for tatㆍ맞불놓기)' 전략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을 더 강하게 자극함으로써 그들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ICBM '기술 평가'에 발끈 왜?
김여정은 또 이날 담화에서 북한 ICBM 기술의 한계를 지적해온 한·미·일의 평가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18일에 쏜 화성-15형과 관련해서는 기습발사에 들어간 소요 시간, 연료의 앰플화, 대기권 재진입 등 관련 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은 한국 전문가의 직책까지 구체적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김여정은 전날 도발과 관련 "(김정은의) 발사 관련 명령서에는 오전 중 발사장 주변을 철저히 봉쇄하고 오후 시간 중 유리하고 적중한 순간을 판단해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데 대한 내용이 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직접 지시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했던 재진입에 대해 "재진입이 실패했다면 탄착순간까지 탄두의 해당 신호자료들을 수신할 수가 없게 된다"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여정의 주장에 대해 "김정은의 명령서 전문이나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내놓은 말뿐인 해명"이란 반응을 내놓으며 여전히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특히 김여정이 기술력을 완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핵·미사일 기술에 대한 과도한 반발을 한 배경에 대해 외교가에선 "불확실한 상황을 활용해 미국에 대한 협박을 이어가기 위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ICBM의 완성도를 강변하며 대미 압박을 시도하고 있다"며 "북한이 지난 18일 '화성-15형' 발사를 한 것도 실질적인 대미 타격 능력의 신뢰성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군 당국도 김여정의 담화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iCBM 재진입 기술 완성 여부는 추가 평가가 필요하다"며 "북한이 주장하는 '기습 발사'가 가능한지는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여정이 한·미 정찰기 7대가 내린 시간대를 골라 쐈다고 하는데, 정찰 자산에 정찰기뿐만 아니라 인공위성을 포함한 다른 것도 있다. 사전에 정찰자산 상황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김주애 효과' 노렸나?
일각에선 한동안 잠잠하던 북한이 김정은의 딸 김주애의 등장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받게 된 상황을 대미 협박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국제 제재와 고립 속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핵·미사일 개발을 추진해왔다. 미국을 위협할 핵과 ICBM 개발을 마치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을 거란 계산이 깔린 도박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무모한 움직임에 사실상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엔 관련 질의가 없으면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먼저 북한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을 정도다.
이와 관련 핵심 당국자는 이날 통화에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마치면 유리한 고지에서 대미 협상을 벌일 수 있을 거라 판단했지만, 미국은 이에 전혀 동조하지 않고 있다"며 "이미 무기 개발을 위한 정치·경제적 무리수를 둬 온 북한의 입장에서 더 이상의 도발 수단을 찾기가 어려워진 상황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국의 산적한 국내외 현안으로 인해 미국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사실상 우선순위에 밀려 있었다. 그러다 김주애가 전면에 나서면서 북한 문제가 재차 국제사회의 관심의 중심에 섰고, 북한은 이와 맞물려 미사일 도발을 재개했다. 북한이 김주애의 등장을 미국과의 담판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불쏘시개'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북한은 기본적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자신들의 강대강 정면승부 기조의 대외 기조를 재확인하고 있다"며 "특히 김주애의 등장을 비롯해 과거보다 수위가 높아진 김여정의 막말 담화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방부는 이날 북한의 방사포 발사와 관련한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은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하여 한·미 간 긴밀한 공조 하에 관련 동향을 추적 감시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확고한 대응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초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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