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우리땅” vs “크림반도 내놔”… 멀고 먼 우크라의 봄

박재현 2023. 2. 2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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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 양상 속 커지는 종전 협상론
오는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주년을 앞두고 한국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19일 자국 국기를 들고 서울시청 인근에서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집회에 참석한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한국 등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향방은 오리무중이다. 현재로선 전쟁이 1년 이상 더 지속하며 ‘장기전’으로 흐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전쟁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하루라도 빨리 종전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요구 조건 너무 다르다

장기전이 불가피한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입장 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려면 영토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러시아는 지난해 병합한 4개 주(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를 순순히 내줄 생각이 없다. 우크라이나는 빼앗긴 4개 주를 되찾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러시아가 요구하는 조건은 돈바스 정도로 생각보다 적은데, 우크라이나는 2014년 빼앗긴 크림반도까지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이 간극을 좁히기 쉽지 않다”며 “최소한 전쟁은 1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구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전쟁은 사실상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문제는 협상의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장기 소모전으로 갈 수밖에 없고, 올 연말도 넘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두 나라가 똑같이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큰 변수다. 엄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전쟁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게 없다면 러시아 국민 입장에서는 패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이는 우크라이나 국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전쟁이 길어지는 이유다. 러시아는 광범위한 제재에도 무역 규모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중국 벨라루스 튀르키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친러 국가들이 서방 금수 목록에 있는 제품 중 대다수를 러시아로 실어 나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원장은 “미국의 주요 제재 대상이 러시아의 에너지, 중국의 제조업인데 두 국가가 연대하면서 제재 효과가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러시아가 드니프로강 동안을 전부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면 3년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협상론’이 주목받는 이유

그럼에도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양측뿐 아니라 전 세계의 출혈이 심화하고 있어서다. 최근 미국 언론에선 조 바이든 정부의 (전쟁) 지원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고 우크라이나가 결정적 시점에 직면했다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무기 없이 전쟁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중대한 메시지다.

우크라이나 내에서도 종전 협상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고문을 지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는 지난 6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국 전력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서방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북한식 (분할) 시나리오다. (안전) 보장을 받은 ‘한국’(한국식 우크라이나)을 세우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우크라이나가 적잖은 보너스(이익)를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점령지를 기준으로 영토를 분할하는 ‘한반도 시나리오’는 전쟁 초기부터 종전 방안의 하나로 거론돼 왔다.

러시아도 최근 협상에 대한 미묘한 메시지를 내놨다. 세르게이 베르시닌 차관은 지난 11일 러시아 국영 즈베즈다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제 조건 없이 기존의 현실에 기초한 회담인 경우 회담에 임한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회담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엄 교수는 “전쟁이 올 연말을 넘길 경우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공급받는 유럽이 분열될 수 있다”며 “주요 산유국 모임인 오펙플러스에서 러시아 역할을 기대하는 중동 국가들이 러시아에 더 우호적으로 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라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의 대공세가 끝난 뒤인 5월이나 6월쯤 바이든 대통령에게 결단의 시점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협상은 험난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 모두 ‘한반도 시나리오’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 전 원장은 “협상은 6·25전쟁 휴전 협상처럼 굉장히 오래갈 텐데 그동안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한반도와 비슷하게 협상의 당사자도 우크라이나가 빠진 유럽과 미국, 러시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핵전쟁 우려 있지만 가능성은 작아

러시아가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서방이 미국의 에이브럼스와 독일의 레오파드2 등 탱크를 지원하기로 한 뒤 러시아는 핵 위협 발언 빈도를 늘리고 있다. 러시아는 1단계로 흑해나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핵 추진 어뢰인 ‘포세이돈’으로 핵실험을 단행하고 2단계로 1~5kt의 저위력 핵폭탄을 교전 지역 인근에 투발하며 3단계로 10~50kt의 전술핵을 사용한다는 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작다. 우크라이나도 최근 서방 국가에서 받은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등 상대를 어느 선 이상 자극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김 전 원장은 “핵무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전면전을 했을 것이고, 시간을 이렇게 끌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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