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고려한 톡톡 아이디어… ‘무라벨’ 생수가 뜬 진짜 이유

문수정 2023. 2. 1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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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굿굿즈] 무라벨 생수의 선두주자 롯데칠성음료를 찾아서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 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하고, 꾸준히 지켜보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무라벨 생수’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일조한 박원(왼쪽) 롯데칠성음료 음료마케팅부문 음료CM2팀 주스생수담당과 도은정 책임이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칠성음료 본사에서 무라벨 생수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런 풍경을 잠깐 떠올려보자. 생수병 하나가 식탁에 놓여있다. 멀찍이서 보면 대체 어떤 제품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저 투명한 페트병에 투명한 물이 담겨 있을 뿐이다. 궁금증을 안고 생수병을 들여다보면 그제야 어떤 제품인지 확인할 수 있다. 투명한 생수병에 음각으로 브랜드 이름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저 투명하기만 한 생수병이라니…. ‘무라벨 생수’의 존재가 지금은 꽤나 익숙해졌지만 2020년 1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세상에 없던 물건’이었다. 무라벨 생수의 첫 등장 상황은 이랬다. 2020년 1월 롯데칠성음료에서 자사몰인 칠성몰에 라벨 없는 ‘아이시스 8.0 ECO(1.5ℓ)’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벨이 없는 1.5ℓ짜리 ‘아이시스 8.0 ECO’ 6개를 한 세트로 묶어 팔았다. 출시 첫 주에 판매량은 고작 36세트였다. 일주일 동안 팔린 무라벨 생수는 모두 216개에 불과했다.

‘라벨이 없는 생수를 판매한다’는 사실은 적잖이 낯설었다. 익숙하지 않은 포장 방식에 제품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소비자 반응이 미미해서 흐지부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소비자 반응이 뜨거웠다. 직관적으로 라벨 없는 생수 제품이 왜 그런 모습을 하게 됐는지 알 수 있었던 게 컸다. 비닐 라벨을 없애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의도를 소비자들은 읽어냈고, 기꺼이 선택했다.

광고와 홍보가 더해지면서 출시 첫달에 4000세트가 팔렸다. 두 달째엔 10만 세트로 뛰었다. 1개월 사이 판매량이 25배나 급증한 것이다. ‘무라벨’ 제품은 그 이후 빠르게 영역을 넓혀갔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에서 생산해 판매한 생수 가운데 ‘무라벨’ 제품 비중은 47%에 이르렀다. ‘무라벨’은 생수 시장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전체 생수 시장에서 30~40%를 무라벨 생수가 차지할 정도가 됐다. 최근에는 사이다, 콜라, 커피 같은 인기 음료제품 포장을 넘어 화장품으로 진출하고 있다. ‘무라벨 음료’는 보편성을 획득했고, 무라벨 생수는 ‘표준’이 됐다.


‘무라벨’이라는, 기존의 시장에 없던 새로운 영역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무라벨 ‘아이시스 ECO’의 개발에 참여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롯데칠성음료 본사를 찾았다. 롯데칠성음료 음료마케팅부문의 음료CM2팀 주스생수담당인 박원 매니저와 도은정 책임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먼저 ‘무라벨 생수’가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것으로 예상했는지를 물었다.

“전혀요(웃음). 기존 규격과 다른 형식을 처음 적용했던 거니까요. 짐작하기가 힘들었어요. 오히려 두려운 마음이 있었죠. 기존 라벨에는 생수 제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정보가 담겨 있거든요. 라벨이 없으면 소비자들이 영양정보라던가 제조원 주소와 같은 정보를 즉각 확인하기 힘들어지는데, 이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싶더라고요. 낯설고 불안한 제품으로 여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박원 매니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생수에는 ‘먹는물관리법’에 따라 수원지, 제조업소명과 주소, 용량, 용기재질, 보관 시 주의사항, 무기물 함량 등의 정보를 표시해야 한다. 모든 정보가 대개 라벨에 적혀 있다. ‘무라벨’을 적용하자니 이 정보를 생수병 하나하나에 표시하는 게 곤란해졌다. 롯데칠성음료가 1.5ℓ짜리 세트 제품에 무라벨을 가장 먼저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제품 배송의 안전성을 위해 필요한 세트 포장 겉면에 정보를 한 번에 담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세트 제품에 여전히 비닐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반박이 나올 법하다. 롯데칠성음료 담당자들은 비닐 사용량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분리배출 편의성’에 초점을 맞췄다. 모든 소비자가 분리배출에 적극적이고 열성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라벨 분리라는 한 단계만 거치지 않아도 분리배출 번거로움은 줄어들고 분리배출 성과도 올라간다. 무라벨 생수 개발자들은 ‘편의성이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무라벨 생수 아이디어는 ‘어떻게 하면 편리하게 분리배출을 할 수 있을까’에서 시작됐어요. 그러다 영국의 ‘Tynant’, 일본 아사히 ‘천연수’가 제품 겉면에 라벨을 없애는 시도를 했더라고요. 그렇게 착안했는데 영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호응을 얻었습니다.”(도은정 책임)

‘무라벨’을 적용하기로 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순탄했을 것도 같다. 라벨을 떼고 판매하는 건 수월해 보인다. 그러나 ‘무라벨’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탄생하기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18년 시작된 고민이 2020년에야 결과물로 나왔다. 기술적인 장벽이 가장 컸다.

“라벨을 없애도 ‘아이시스’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무라벨과 BI를 동시에 잡는 방법으로 고심 끝에 ‘페트에 음각으로 새긴다’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그런데 음각을 어떻게 새기느냐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생수는 적재해서 이송되고 판매하잖아요. 적재된 무게를 견딜 만큼 견고하게 만들려면 음각의 크기나 요철의 정도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했어요. 그걸 찾아내는데 13개월이 걸렸습니다.”(박원 매니저)

창고에 높다랗게 쌓여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찌그러지지 않고 터지지 않는 생수병 모양새를 찾는 일이 결코 간단치 않았다. ‘먹는물관리법’에도 저촉되지 않으면서 안전한 제품을 찾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생수를 즐겨 마시는 소비자라면 “편의점 생수에는 라벨이 붙어있던데?”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니다. 편의점 PB제품 중심으로 ‘넥라벨’이라고 부르는 비닐이 뚜껑에 둘러싸여 있기도 하다. 박 매니저는 “낱개 판매 생수는 넥라벨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BI가 견고한 상품일수록 넥라벨로 변경하는데 장벽이 낮은 편”이라고 했다. 박 매니저는 “무라벨 생수는 앞으로 더 확산될 전망”이라며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업계 표준을 만들었다는 점이 특히 뿌듯하다”고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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